사회 일반 [손가락칼럼] ‘유희곤 기자들’에게 드리는 편지...뉴욕타임즈는 권력 감시를 포기해서 이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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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830회 작성일 20-01-0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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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JTBC 신년토론 방송화면 갈무리




[편집자주]

'손가락칼럼'은 휴대폰으로 쓰는 칼럼입니다. 형식은 가볍고 진심은 무거운 칼럼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허재현 기자만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유희곤 기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안녕하세요. 경향신문 법조팀 유희곤 기자님. 이렇게 갑자기 공개 편지를 보내어 미안합니다. 사실 꼭 유희곤 기자에게만 보내는 편지가 아니지만, 요즘 유 기자를 중심으로 검찰 기자단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어 부득이 이런 형식을 띄게 되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진보언론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최근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을 왠지 '진영주의자들의 과도한 비판' 정도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제가 이렇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제 얘기를 얼마나 귀기울여 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언론계 전체가 한번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먼저, 저 역시 친문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기레기'로 불리고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수시로 SNS에 남겨왔고, 한겨레에서 '민주당 선거브로커' 드루킹의 존재를 고발했기 때문에 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폐기자로 분류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태반이, '사람사는세상' 등의 포스터를 SNS 대문에 걸어놓고 있는 누리꾼들입니다. 이런 누리꾼을 볼 때마다 저역시 얼마나 씁쓸한지 모른답니다. 그러니 이 글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진보언론 법조기사들에 쏟아지는 여러 비판들을 저는 꼭 특정 진영의 모함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귀기울여 들을 부분이 분명히 있고, 또한 이러한 불신은 사실 우리 언론이 만들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유 기자께서 <미디어오늘>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런 부분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부족한 듯 해 안타까웠습니다.  유 기자는 "(국정농단) 적폐 수사 보도 때처럼 나는 내 할일을 똑같이 하고 있다. 수사 대상이 누구든지 공적 인물 비위에 대한 검찰 수사는 보도할 가치가 있다"면서 '검찰 유착 기자'라는 비난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유희곤 기자의 문제는 기사의 전개 방식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유 기자가 뭘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유 기자의 'writing' 과 'research'의 폭을 문제 삼는 것이지, 검찰 상대 'research' 자체를 문제 삼는게 아닙니다. 당연히 검찰이 벌이는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취재해야지요. 공직자에 대한 감시는 성역이 없어야 합니다. 유 기자의 ' 검찰 리서치'는 기자의 책무입니다. 다만, 'research(취재)의 깊이와  writing(기사)'에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성찰의 부족입니다.


저는 처음에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유희곤 기자를 대놓고 지적하길래 좀 놀랐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그 전까지 유 기자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래서 속으로는 '유시민 이사장이 특정 기자를 대놓고 지적하는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 기자가 써온 기사들을 몇개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유 기자의 기사는 매우 오랫동안 기사 전개의 오류가 축적되어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단 한번도 시정 노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 기자에 대한 불신은 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니라, 오랜 기간 쌓여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9년 12월26일 <"조국, 유재수 수사 본격화되자 박형철에 전화"> 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게 전화해 증거인멸 등의 회유를 한 듯한 정황을 검찰 관계인의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더군요. 기사를 낸 날은, 공교롭게도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던 날입니다. 하필 보도 타이밍이 왜 이런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들지만, 그 말은 아끼겠습니다.


제가 문제의식을 느낀 건 기사 전개 방식입니다. 조 전 장관 쪽에 대한 취재가 전혀 없었는지 아무런 반론이 실려 있지 않고 그저 검찰 쪽 주장만 들어있었습니다.  ‘검찰은 사건 관계인을 회유한 정황이라고 보고 있다’는 유 기자의 해석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검찰 쪽 주장과 유 기자의 분석 뒤에 저는 조 전 장관 쪽은 뭐라고 반박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기사를 끝까지 읽어봤지만 어디에도 그건 없었습니다. 저는 설사 유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기사는 큰 문제라고 느낍니다. 왜 한쪽의 반론이 없습니까? 취재를 안한 겁니까? 아니면, 유 기자가 반론도 싣자고 주장했는데 데스크가 빼버린 겁니까? 대체 진실이 무엇입니까? 이러니, 시민들이 유 기자의 기사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 아닐까요? 이게 한두번은 그렇다 쳐도 몇개월간 이런 식이었다면, 당연히 시민들로서는 '검찰 유착 기자'라고 의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식의 검찰발 법조 기사는 유 기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겨레 강희철 법조선임기자의 기사를 함께 봅시다. 2019년 12월3일 <숨진 전 청와대 특감반원, 긴급체포 걱정..유족들 "유품 빨리 돌려달라">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을 도청한 것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입니다. 숨진 사람이 "도청당하는 것 같다"고 불안해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사 안의 근거는 검찰 관계자의 "(특감반원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사람이 아니다"는 멘트가 전부입니다.


적어도 청와대의 도청의혹같은 것을 제기하려면, 숨진 사람의 유족을 만나보거나 휴대전화 메시지의 일부라도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습니다. 너무나 게으른 기사, 혹은 자격미달의 이런 기사들이 검찰 관계자의 입만 빌려 진보언론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강 기자는 유 기자와 달리 청와대 쪽의 "청와대가 고인에게 압박을 가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는 형식적 반론 정도는 한줄 실었습니다.


유 기자님. 진보언론 기자들도 당연히 검찰 관계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저도 많이 그랬습니다. 시민들은 그런 취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왜 그들 이야기만 늘 기사에 반영하냐는 것이 시민들의 문제제기 아닐까요. 우리 기자들이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곳을 출입하는 건 그들 이야기를 참조해서 취재를 하라는 것이지, 그들 이야기만 전하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대체 유 기자와 같은 검찰 기자들은 왜 이런 식의 기사 전개 방식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입니까.



해외 권위지들이 검찰 수사 속보를 보도하는 방식

저는 얼마전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을 분석해 이들이 정치인 수사 속보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폈습니다. 조국 전 법무장관 관련 수사소식은 물론이고 스트라우스 칸 IMF 총재의 성추문 사건의 보도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결코 수사기관의 말을 빌려, 단정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이라고 해서 수사관 취재원이 없겠습니까? 제가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을 정도면, 어느 정도 범죄 혐의가 드러난 것인데 왜 이렇게 건조하게 보도하는지' 말이지요.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는 결코 reveal(드러나다) 이란 단어를 쓸 수 없어요. 그건 검찰의 관점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allegation'(혐의) 이나 'charge'(의심·책임) 정도의 단어로만 표현합니다. 수사기관과 피의자 양쪽 모두 인정하는 부분에서만 'reveal' 단어를 쓰는 것이 관행입니다."


<뉴욕타임즈>는 조 전 장관 가족이 받는 혐의에 대해 설명하되 이런 문장을 쓰고 있었습니다. 'the allegations against his family remain unsubstantiated' (조 전 장관 가족의 혐의는 아직 사실로 확인된 건 아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기사를 쓰겠습니까. 유 기자와 달리 '공인에 대한 비위 감시'라는 기자의 책무를 이들이 내려놓은 거겠습니까. 그럴리가요.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우리나라 검찰기자들의 문제는 'research' 자체가 아니라 'writing' 인 겁니다.




과연 국정농단 사건과 조국 사건은 같은가?

유 기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때도 언론들은 검찰 수사 속보를 전했다.' 맞습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했지요. 저도 당시 한겨레 법조팀에 있으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변호사법 위반 의혹과 가족기업의 탈세 의혹을 파헤쳐 보도했기 때문에, 그때를 기자로서 뿌듯했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은 검찰이 주도했던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기억해보십시오. 언론이 검찰보다 더 먼저 비위를 밝혀냈고, 검찰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비위를 고발했던 사건입니다. 즉, 검찰 수사를 언론이 견인했던 사건입니다. 언론이 검찰이 선택적으로 흘려주는 팩트들에 휘둘리지 않고 사안을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보도할 수 있었던 사건이 바로 국정농단 사건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국 사건은 어떻습니까. 이 사건이 언론에 의해 시작됐습니까. 언론이 주도하고 있는 사건입니까, 검찰이 주도하고 있는 사건입니까. 당연히 후자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공직자 비위를 감시하는 건 좋은데 검찰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은 없는지도 함께 감시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우병우는 나쁘고 조국은 좋은 사람이라서'라는 그런 진영논리가 아닌 겁니다. 유 기자.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유 기자. 저는 2018년 한겨레 퇴직 전까지 신입 기자들의 기사쓰기와 취재 교육을 담당하던 사람(경찰청 바이스)이었습니다. 제가 신입 후배들에게 한번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던져주고 기사를 쓰도록 시켰습니다. 후배들이 하나같이 민변과 참여연대의 주장만으로 '~가 드러났다'는 식의 기사를 써오더군요. 저는 웃으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민변과 참여연대같은 곳이 주장하면, 그게 진실인가요? 왜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바로 확신해서 기사를 쓰지요? 민변과 참여연대를 결코 한 편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날 제 훈육의 의도는 이런 거였습니다.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취재원과 친하게 지내되 늘 경계하고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교육을 받은 한겨레 후배들이 훗날 시니어 기자가 되어서 이날의 교육을 기억하고 기사를 써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 기자님도 분명 경향신문 신입기자일 때 이런 교육을 선배들로부터 받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유 기자가 그때 받았던 교육을 다시 떠올려봐야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없는 기자는 조갑제처럼 낡는다 

조갑제 기자 잘 아시지요? 조 기자는 정말 기자로서 훌륭했던 사람입니다. 80년대 중반 치열한 취재 끝에 한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밝혀내고 책으로 쓴 사람입니다. 국가정보기관을 출입하며,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캐내어 특종보도를 한 기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는 기자의 극적인 말로가 바로 조갑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갑제 기자는 그 훌륭한 취재력을 활용할 줄만 알았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이 수집한 정보들의 오류는 없는지 되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수집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고, 점점 반공주의 기자가 되어갑니다. 그러면서 지금 조갑제 기자는 공공연히 "무슨 취재를 했느냐가 아니라 결론이 맞느냐가 중요하다"고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유 기자. 저는 조갑제가 유 기자의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기사의 결론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자위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 없이 20년 이상을 보내면 조갑제같은 '낡은 괴물 기자'가 되어갑니다. 다음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는 "검찰 유착기자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내 기사의 전개방식에 오류는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는 진일보한 유 기자의 말이 실리기를 기대합니다. 지금도 사명감 하나를 발판 삼아 현장을 뛰는 수많은 '유희곤 기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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