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터뷰인터뷰 [인터뷰] 만화가 이정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 - 혼돈의 시기, 서로가 서로의 위로와 희망 돼 줘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72회 작성일 25-01-07 20:03본문
<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근처에서 인터뷰 중인 이정헌 만화가. 사진 촬영 정숙 시민기자 >
묵묵히 자신의 역할 해내는 사람에 눈길 가
그림이 알려지는 건 마음이 전달된 것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 잊지 말아야
주체와 시대가 젊어진 집회, 모두 마음 보태야
집회 참여와 그림에 메시지 담는 건 같은 마음
예술인, 시민들 각자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
서로가 서로의 위로와 희망이 돼 줘야
지난 1월 5일 강추위와 폭설에도 불구하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은 은박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밤새 집회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은박 담요를 두른 시민들의 모습이 키세스 초코렛의 포장지 은박지를 닮았다고 해 ‘키세스 시위대’라고 불렸다. 거센 폭설과 한파를 이겨내고 집회에 참가해 은박 담요를 두른 한 시민의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라는 그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정헌 만화가는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을 맡았을 때 딸 생일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 화제가 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지난 1월 7일 경기도 한국만화박물관 근처에서 이정헌 만화가를 만나 이번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그림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어수선한 시국에서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2019년 9월 26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 작품명 '뒷모습'.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
묵묵히 자신의 역할 해내는 사람에 눈길 가
그림이 알려지는 건 마음이 전달된 것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 있음을 잊지 말아야
-이번에 화제가 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계속 작업실에 메여있다 보니까 시민들이 계시는 현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와서 밤을 새는 분들을 보면서 어떡하면 그분들과 더 공감하고 그분들의 마음이나 상황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제가 잘 할 수 있는 그림으로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그림에 공감을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자신들도 현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림으로 제 마음이 전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 왜 그분을 그렸냐고 많이 물어 보시는데 신나게 웃으며 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을 그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앞에 나서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제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제 성격도 마찬가지로 주목 받거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사진에서도 그분은 본인이 드러나게 나오지 않았고 꼭 그 한 분이 그림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분이 현장에 나왔던 모든 분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그림이 유명해진 것이 느껴지나요?
어떤 그림은 예상치 못하게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렸는데 주목받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그림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에 일희일비했었는데 지금은 제 그림을 많이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유명해지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진다고 해서 저라는 사람이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많이 알려진다는 것은 제 마음이 전달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왜 사람들이 이번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그림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야 합니다. 강추위에 눈을 맞으며 밤을 새는 분들이 힘들지만 견디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린 사람의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그분께 "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 시민들 모두가 옆에서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세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진이 주는 힘이 있고 그림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사진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사진이 다른 작품인 그림으로 만들어지면 작가의 의도가 조금 더 담기게 됩니다. 제 사진을 보신 분들이 현장에 계시는 분들을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고 참여도 하시고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 달라는 저만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 이번에 화제가 된 그림. 작품명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
< 작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를 그린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이정헌 만화가. 사진 촬영 정숙 시민기자 >
주체와 시대 젊어진 집회, 모두 마음 보태야
집회 참여와 그림에 메시지 담는 건 같은 마음
-이번 시민들의 집회를 보며 무엇을 느꼈나요?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확실히 젊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현장에 안 가보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한다는 얘기를 그냥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릅니다. 직접 응원봉을 가지고 와서 젊은 세대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집회를 이끄는 주체와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한 번도 안 가보신 분들은 최소한 한 번이라도 가서 같이 즐기고 함께 마음을 보태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현장에서 밤을 새거나 집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노력이나 제가 그림을 그리는 노력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집회 현장에서는 만약의 경우 물대포를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감수하고 나가시는 분들과 제가 그림을 그리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림을 그린다고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계속 작품속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을 생각입니다. 제 그림으로 상처받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를 악마화 시키고 죽이거나 하는 등 자극적인 것들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만 저는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좀 더 위로받고 힘이 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 2022년 1월 4일. 지난 대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탈모약 건강보허 적용 공약을 그린 그림. 작품명 '심는다 이재명'.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
<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해 BTS 응원봉을 들고 사람들을 화장실로 안내하는 신부님을 그린 그림. 작품명 '화장실 갈 사람?'.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
예술인, 시민들 각자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
서로가 서로의 위로와 희망 돼 줘야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은 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역할을 했을 때 100%의 효율이 있다면 그걸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시간이 나면 집회 현장에 더 많이 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 일도 중요하지만 제가 그린 그림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더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인이라고 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다는 시민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요?
제가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한다기보다 제가 사람들에게 제 그림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나 정치인들이 말도 안 되는 절망을 주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힘들어서 쓰러질 수도 있지만 다시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은 시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23일 남태령에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있었을 때 그 추위에 아들, 딸과 같은 젊은이들이 농민들의 시위를 도울 거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이번에 제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처럼 눈이 오는데도 밤새 그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런 메시지가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힘이 안 날 수가 없거든요. 서로가 서로의 위로와 희망이 돼 주는 모습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거기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 2024년 12월 23일 남태령에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를 그린 그림. 작품명 '남태령 대첩'.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
인터뷰 및 기사 정리 / 정숙 <리포액트> 시민기자
- 이전글응원봉 들고 집회 참여한 2030 청년들 -" 미래 주권자인 우리가 나라의 안위 책임져야" 25.01.12
- 다음글이지은 “공수처, 경호처장 등 현장 체포하면서 대통령 공관 진입했어야” 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