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죽이기 [취재후] ‘술파티’ 쌍방울 법카까지 나왔는데… ‘검찰이 설마’ 판단해버린 이화영 항소심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1,631회 작성일 24-12-23 20:37본문
[사진설명]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가 지난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항소심(수원고법 형사1부 문주형 김민상 강영재 판사)에서도 대북송금 혐의 등이 인정돼 19일 징역 7년8월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고법이 배포한 판결 설명문과 판사의 설명을 23일 종합 분석해보면,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은 너무 쉽게 받아들인 반면 이 전 부지사 쪽이 주장한 검찰의 불법 조작 수사 정황은 제대로 살펴보려 하지 않거나 수사권도 없는 변호인단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입증만을 요구한 인상이다. 판결 도출과정이 논리적이라면 이 전 부지사 쪽도 어느 정도 선고 결과에 수긍을 하겠지만, 이번 판결은 논리 도출 과정의 문제점이 상당해 논란은 끊이지 않을 듯 보인다. 이글에서는 항소심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던 △검찰 조사실 술파티 정황과 쌍방울 법카 내역 △김성태로부터 돈을 받아갔다는 리호남의 부재 논란 △김성태 증언 신빙성과 주가부양 흔적 등에 대해 재판부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펴보겠다.
■ 수원지검 인근서 쌍방울 법카 사용 수두룩한데 무시해버린 재판부
재판부는 이른바 ‘검찰 조사실 연어 술파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아래와 같은 이유를 밝혔다. “연어 술파티 관련 회유 관련 이 부분은 피고인 주장대로 쌍방울 법인 카드가 수원지검 인근에서 결제된 내역이 있고 방용철 부회장 등이 검찰청에서 조사 받은 사실 있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내세우지만 피고인이 검찰 출정할 때 교도관들 다수가 동행하고 검찰 영상녹화실 구조상 피고인이 주장하는 그런 일이 실제 가능한지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검찰 조사실 술파티 의혹'을 재판부가 얼마나 성실하게 들여다보려 했는지가 되레 의구심이 든다. 이번 재판부는 교도관 증인 출석을 명령해 직접 증언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재판부 직권으로 검찰 조사실 현장조사도 가능하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그저 '설마 검찰 내부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예단에 애써 갇혀 있으려 한 것은 아닐까.
물론, 검찰 조사실에서 그런 술파티 특혜가 벌어진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긴 하다. 그러니 이 전 부지사의 주장에 세상이 발칵 뒤집힌 것 아닌가. 재판부는 더 성의를 기울여 이번 의혹을 살폈어야 한다. 끝내 검찰은 피고인들에 대한 출정기록 제출마저 하지 않았는데 그냥 넘어갔다.
재판부가 “쌍방울 법인 카드가 수원지검 인근에서 결제된 내역이 있다”고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사용 양태를 분석해보면 이건 단순한 결제 내역으로 결코 볼 수 없다. 법정에 제출된 쌍방울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2023년 6월15일(목) 하루에만 수원지검 인근 음식점 등에서 53만5천원이 사용됐다. 특히 저녁 7시42분 수원지검 앞 해산물전문점에서 39만8천원 어치가 결제됐다. 쌍방울 직원 한두명이 사용 가능한 액수가 아니다.
2023년 6월18일(일)의 사용내역은 더욱 수상하다. 수원지검 앞 한우전문점에서 오후 4시17분~20분 사이에 총 21만9천원이 결제된 뒤 같은 곳에서 저녁 6시56분 8만4천원이 결제됐다 이어 수원지검 인근 다른 음식점에서 저녁 7시58분 4만8천원이 결제되고 역시 인근 다른 음식점에서 밤 10시43분 5만5천원이 결제됐다. 하루에 수원지검 인근에서 41만2천원이 결제됐는데 이날은 일요일이었다. 쌍방울 직원 두세명이 일부러 일요일에 수원지검 앞에 모여 음식점을 옮겨다니며 하루종일 법카로 회식이라도 했을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한 것일까.
이른바 '연어술파티 흔적'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였을까. 재판부는 묘한 논리를 끌어왔다. “피고인의 정치 경력 연령 학력 등 모두 고려하여 볼 때 연어나 술 등 제공이 있었다고 하여 피고인이 진술할 때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위법한 대질신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화영 전 부지사 쪽은 단순히 연어 술파티 등 특혜 때문에 '대북송금 관련 허위자백이 이뤄졌다'고 주장한 게 아니다. 검찰이 이 전 부지사 쪽을 별건 수사로 괴롭힌 정황이 있고, 김성태 쌍방울 회장 등에게는 자본시장법 위반(주가조작) 등에 대해 축소수사한 정황이 짙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 플리바게닝 거래를, 비협조하면 별건 수사 괴롭히기를 벌였다는 불법 수사 정황이 짙은데 재판부는 그저 '상식적으로 술 몇잔 얻어먹자고 허위자백 했겠나’ 하는 안일한 판단만 하고 말았다.
■ 쌍방울 주가부양 흔적 인정하면서도 이화영으로만 몰고간 재판부
그나마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때와 달리 김성태 회장 등의 대북사업에 따른 주가부양 흔적 등에 대해 살펴본 점은 그나마 1심보다 진전된 대목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성태 방용철이 스마트팜 비용 대납 후 대북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주가 부양 효과를 상당히 기대하였던 사정은 보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북사업 핵심동기는 이화영의 요청으로 보이고 이화영의 요청이 없었다면 김성태가 북한당국을 접촉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쌍방울의 주가부양 흔적들은 애써 그 의미를 축소했다.
2019년 이재명 경기지사는 공직선거법 항소심 재판을 받았고 심지어 11월에는 유죄를 선고받아 정치적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방북마저 무산되는 분위기였다. 김 회장이 매우 불투명해보이는 '이재명 방북'에 올인했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실질적으로 시도한 흔적(내부자들의 카톡 대화)이 있는 주가부양에 올인했다고 봐야 할까. 심지어 국정원 문건 등에는 '쌍방울이 주가부양 목적으로 대북 송금을 하고 있다'는 내용만 반복되고 '이재명 지사의 방북 추진' 정보는 기록 자체가 없었다. 국정원 문건은 심지어 “2019년 7월 마닐라 국제대회 이후 안부수(김성태 측근)와 이화영 부지사의 사이가 나빠져 안부수는 ‘앞으로 경기도의 대북사업은 무조건 안되게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들을 모두 무시했다.
'리호남 부재 논란'에 대해 재판부는 “금전수수 당사자가 해당 일시 존재하였다는 객관적 증거가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는 설명을 했는데 이 부분도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김성태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의 호텔에서 북한의 리호남에게 이재명 지사 방북비 일부를 줬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리호남이 이날 현장에 있었다는 게 증명되지 않고 국정원 요원 등은 “마닐라에 왔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증언까지 했다. 마닐라 국제대회 조직책임자이자 북한 일행을 직접 초대한 안부수조차도 “리호남을 못본 건 맞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리호남 부재' 증거들은 모두 기각하고 김 회장의 주장만 신뢰하고 말았다.
'금전 수수 당사자가 해당 일시 존재하였다는 객관적 증거가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는 이런 판례가 정착될 수록 남북관계의 특성상 앞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번 사건의 문제는 돈을 받았다는 사람이 북한 국적자라는 점이다. 북한은 우리 사법기관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누군가가 북한을 핑계로 대면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돈을 받아갔다는 증거가 없어도 된다’는 판례가 정착되면,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기업 회장 등이 횡령죄를 저지른 뒤 '북한에 뇌물로 줬다'고 해버리거나 검찰에 밉보인 민주당 정치인 등은 간첩으로 모함을 당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어차피 북한은 입증도 안되니까...‘검찰 위법수사’ 의심도 안하는 재판부
김성태 증언 신빙성을 인정하는 논리로 재판부가 “이들 진술은 쌍방울그룹 임직원들, 안부수 등 여러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에 의하여 뒷받침 되는 점”이라고 설명한 것도 객관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성태 회장과 쌍방울 임직원과 안부수 등은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이다. 쌍방울이 주가조작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지 않을 수록 이들이 얻게 되는 이익은 천문학적 규모이다. 또한 “이화영 부지사의 부탁으로 대북송금을 했다”는 증언 또한 김성태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김 회장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에 불과하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특정 집단이 작정하고 한 정치인을 모함에 빠트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저 '관계자 등 진술이 일관되고 일치한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이렇게 쉽게 신빙성을 인정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권력감시 탐사보도 그룹' <워치독>은 이 전 부지사의 재판기록 일체를 입수해 사실상 모든 증거에 대해 수개월간 전수조사를 벌였다. 김 전 회장의 주장, 이를 전해들은 쌍방울 임직원들의 증언 외에 '이재명 방북을 위한 대북송금'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입증할 다른 물증은 재판부에 제출된 게 없다. 확인도 되지 않는 북한 당국자를 상대로 벌어진 뇌물 사건이 특정인의 주장만으로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우리 사법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듯 하다. 법관의 양심에 따라 증거의 가치를 판단하는 자유심증주의를 북한 당국을 상대로 벌어진 사건의 경우에는 그 적용을 신중해야 한다. 우리의 수사기관이 분단의 비극을 악용해 각종 국가보안법 사건을 발표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은 여전하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사실로 드러난 지 불과 10년 밖에 안됐다.
허재현,김성진,김시몬,조하준 <워치독> 기자 watchdog@mindelnews.com
☞ 탐사보도그룹 <워치독>은 리포액트 허재현 기자, 시민언론 민들레 김성진 기자, 시민언론 뉴탐사 김시몬 기자,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가 만든 권력 감시 공동 취재팀이다.
- 이전글[분석] ‘대북송금’ 이화영 유죄가 이재명 유죄로 곧장 연결되지 않는 이유 24.12.24
- 다음글“권력감시 보도의 새 유형 제시” <워치독> 취재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본상 수상 2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