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손가락칼럼] 오징어게임과 쌍용차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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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1,551회 작성일 21-09-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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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오징어게임> 드라마 장면 갈무리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화제다. 언론에서는 "신선한 이야기 전개"," 미국 시청율 1위" 등의 수식어로 이 드라마를 소개하느라 바쁘다.



나역시 이 드라마를 챙겨봤다. 정말 좋은 드라마였다. 시나리오가 탄탄한 것은 물론, (관객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삽입하고 마는) 뻔한 클리셰 장치 따위가 없어서(그럼에도 뒤통수를 친다) 좋았다. 아직 못보신 분들은 챙겨보길 권한다.



다만,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인 이정재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아는가? 얼마전 '화천대유'에서 50억 받고 퇴직한 곽상도 아들이 "나는 오징어게임의 말이었을 뿐이다"라는 헛소리를 하던데 이자는 아마 에피소드 5편에서 이정재가 회상한 그 자동차 파업현장의 아비규환 장면이 뭔지 모르고 떠든 듯 하다.  



이정재의 눈 앞에서 갑자기 화약같은 게 터지고 희뿌연 연기가 자욱해진다. 헬맷 하나가 보호장구의 전부인 노동자들이 쓰러져 있고 그들을 향해 곤봉을 든 경찰특공대원들이 달려든다. 아무런 기력 없이 쓰러진 노동자들의 몸뚱아리가 부서지도록 곤봉을 내려치고, 분에 못이긴 어떤 경찰은 발로 콱 하고 쓰러진 이의 몸을 짓이긴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설마... 설마... <오징어게임>에 저 장면이 왜 나오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대사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이정재는 10여년전 쌍용차(드래곤 모터스) 해고자였고, 파업농성에 가담했다가 별 소득 없이 쫓겨난 뒤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그 가난해진 노동자였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순간에, 잊고있던 과거의 한 장면이 내 눈 앞에 다시 펼쳐지자 당횡스러웠다. 잠시 텔레비전을 끄고 아득한 그 시절로 돌아갔다.



2009년 8월 나는 평택 쌍용차 농성장에 잠입해 들어가 있었던 기자였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반복되고 있는 경찰 폭력의 현장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로 버텼던 것 같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그 곳에서, 경찰이 하루종일 뿌려대는 최루가스를 마셔가며 주먹밥 몇개에 의존해 그 안에서 보름을 견뎠고, 나는 목격했다. 



"어? 이건 광주 항쟁 전시사진에서나 보던 그 장면 아니야?"  내 눈 앞에 펼쳐진 말도 안되는 상황에 놀라, 나도 모르게 뱉었던 이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 8월 5일 새벽. 파업현장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었고, 노동자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 곤봉에 머리통이 날아가고, 사지 곳곳을 두들겨 맞으며 쓰러져갔다. 우두두두두두 하는 경찰의 헬기소리를 뚫고 노동자들의 비명소리가 피튀기듯 터져나왔다. 동시에 쌍용차에서 고용한 경비용역들이 새총으로 볼트나 너트 따위를 날려대었고 노동자들의 몸 곳곳에 퍽하고 부딪혔다.



'으악.'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내가 기자인 걸 몰랐으리라. 누군가가 날 겨냥해 새총을 겨누었고 내 가슴팍에 볼트 하나가 날아와 퍽 소리를 내더니 이내 몸에서 튕겨져 나갔다. 그 때의 상처는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다. 나는 카메라를 켰고,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았다. 그렇게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폭력의 현장은 한겨레 보도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대부분 언론이 내가 찍은 영상을 받아서 전송했다.



나는 그때 좀 흥분해 있었다. 어떻게 21세기에 이런 국가 폭력이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벌벌 떨리는 손으로 회사에 그 영상을 전송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에선 처음에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선배에게 흥분해서 상황을 보고하는데 선배는 시큰둥했다. 답답했다. "지금 노동자들을 정말 경찰이 복날 개패듯이 패고 있어요!", "흥분하지 말고 수식어 없이 객관적으로 보고해봐."



이 장면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난 그 때 너무 어린 기자였고, 너무 놀라 있었고, 객관적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선배는 광주항쟁의 비극같은 장면이 21세기 한복판에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내 보고를 쉽게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배가 이 영상을 보면 태도가 달라질거야.'  이를 악물고 회사에 영상을 전송했던 기억이 난다. 혹여라도 인터넷이 끊길까 조마조마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결국 5분 남짓한 영상이 전송되었고, 회사에서는 그제서야 이곳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아차린 듯 했다.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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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허재현 기자가 2008년 평택 쌍용차공장 파업 현장에서 찍었던 촬영장면 일부.



나는 그해 기자로서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겐 대단히 의미있는 한 해가 되었지만 쌍용차 해고자들에겐 그러지 못했다.

 나는 적어도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문책을 당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되레 그를 서울경찰청장으로 승진시키더니 끝내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고 소식을 세상에 전했고, 나는 이후 오랫동안 이들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파업 이후 정신병을 앓고 있는(상징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 자신의 아파트에서 비상식량을 가득 쌓아둔 채 1년 넘게 파업 농성을 벌이는 정신병 걸린 쌍용차 해고자를 만난 적 있다.) 노동자들을 만난 뒤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쌍용차 해고자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 같은 것을 해보았고, 다행히 공지영 작가 등이 함께 해주어 큰 힘이 되었지만, 정작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에 복귀하기까지 10년 이상을 보내야 했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겨레 입사하자마자 굵직굵직한 특종 기사를 쏟아내었다. 그 첫 기사가 바로 이 쌍용차 살인진압 현장이었다. 내가 노력만 하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던 신입기자 시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특종 기사를 아무리 쏟아내어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내게 쌍용차 사건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잡한 고민을 던져주곤 한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사건을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다시 마주하니 감정이 복잡하다. 이 드라마를 본 미국 사람들은 이정재의 회상 장면이 2008년 한국에서 벌어진 쌍용차 파업농성 현장임을 아마 모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찰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어 괴물처럼 뛰어다녔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오징어게임> 연출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 장면을 삽입한 것일까. 


한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한겨레에서 해고된 뒤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재현아. 너 그러고보니 참 좋은 기사 많이 썼구나. 지금은 기자 사회에서 여전히 조롱과 놀림감의 대상이지만, 누군가는 너가 썼던 기사를 보고 10년 뒤에 이런 장면을 영화 속에 담기도 하잖아? 심지어 전 세계에 이 장면이 알려지고 있어. 힘을 내자. 넌 여전히 할 일이 많은 기자야.' 



마지막으로, 더이상 이땅의 노동자들이 '오징어게임'의 말 같은 존재로 살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부디 이 글이 해외 곳곳에 전해져서 이정재가 연기한 캐릭터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들과 사건에 대한 상징인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아직까지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잊을만 할 때쯤이면 '허기자 힘내'라고 글을 보내오시는 한상균님(당시 쌍용차노조 위원장)이 오늘 갑자기 보고 싶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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