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저널리즘 연구 경향신문에 보낸 미투 저널리즘 허재현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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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296회 작성일 20-08-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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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제출한 글입니다. 그러나 미투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살펴보실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강진구 기자 징계 재고를 위한 의견서





진실보도를 위해 애쓰는 경향신문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박재동 화백 미투 사건 의혹 제기’ 보도를 한 강진구 기자에 대한 경향신문 인사위원회 논의에 앞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경향신문에 징계 결정의 재고를 부탁하며 아래와 같은 의견을 드립니다. 



1.성범죄보도준칙과 미투보도준칙은 달라야 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향신문은 강진구 기자가 사내 성범죄보도준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기자협회가 각 언론사에 성범죄보도준칙 제정을 권고한 것은 지금과 같은 미투보도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2012년 8월 전라남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2차 가해성의 보도를 양산했습니다. 피해자 얼굴이 담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내거나, 피해자 부모를 게임과 알코올 중독에 걸린 것처럼 왜곡해 보도하는 등의 행태가 문제되며 언론계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해 12월 한국기자협회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범죄보도준칙을 함께 만들어 각 언론사에 성범죄보도준칙 제정을 권고했습니다.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우리 언론계는 물론 각계에 다양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지하듯,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미투 사건’이 아닙니다. 언론은 ‘성범죄 사건’과 ‘미투 폭로 사건’은 구분해 접근해야 합니다. 전자는 ‘형사적 판단이 완료된 사안’인 반면, 후자는 ‘형사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인 탓입니다. 따라서 성범죄보도준칙을 미투보도에까지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곤란합니다. 


박재동 화백 성폭력 의혹 사건은, 한 여성의 폭로로 2018년 제기된 바 있지만 박재동 화백은 본인이 연루된 성폭력 일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폭로자는 박 화백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하지 않았고 형사재판이 열린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박재동 화백 관련 사건’은 미투 사건이지 성범죄 사건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적으로 그러하다는 설명입니다. 성범죄보도준칙으로서 강진구 기자의 기사가 판단되고 나아가 기자를 징계하는 것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성범죄보도준칙 권고안을 만들 때 미투보도에 까지 이 준칙이 적용될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권고안 세부 사항을 더욱 다듬고 논의를 진전시켰을 것임이 명확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가 본격화한 것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위대한 용기 덕분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2년여간 미투 보도의 원칙과 윤리 준칙 등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한 바가 없습니다. 


미투보도로 인한 피해자 2차 가해 등의 부작용은 당연히 예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범죄보도준칙 외에 언론사는 미투보도준칙을 따로 논의해 적절한 방침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부터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허나 그 논의의 시작이, 강진구 기자의 징계로부터 시작되면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 모두에 큰 불행이 될 것입니다.




2.‘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은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논쟁중인 사안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향신문 인사위원회는 ‘강진구 기자의 기사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차 가해’ 등의 개념은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오랜 기간 논쟁중인 사안이며 언론이 이를 함부로 수용하는 것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었다


먼저 피해자중심주의 용어가 어떻게 나온 단어인지 살핍니다. 이 말이 처음 대중에 소개된 게 2000년대 초입니다. 90년대까지 대학총학생회,노동조합,사회운동단체 등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이 만연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운동가 100여명이 모여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만들었고 2000년 7월부터 2003년10월까지 활동했습니다. 


이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피해자 경험에 기반해 성폭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0인 위원회는 발간한 백서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특징이 사적인 자리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또 객관적 증거나 증인의 부재,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기억을 전제한다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사실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당시 진보진영에서 이 견해는 대체로 수용되었습니다. 왜냐면 워낙 성폭력 가해자 시선에 젖어 있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기 위해 내던져진 일종의 '캠페인성 선언'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학계의 공통적인 설명입니다.  참조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5장 피해자중심주의는 여성주의적 원칙인가 (권김현영,2019)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 중심'이란 단어에 '주의'라는 단어가 붙어 '성폭력 사건 조사의 절대 원칙'처럼 변질되어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무려 2004년부터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말이 진리'라는 뜻이 아니다

2005년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한국여성민우회 내부집담회에서 '피해자중심주의' 대신 '피해자 관점'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된 바 있고, 2006년 정희진이 '성적자기결정권을 넘어서'라는 글에서는 나아가 "피해자중심주의는 여성주의가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2012년 여성학자 전희경은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라는 글에서 피해자중심주의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되는지 주장했고, 2017년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등이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에서 "폭로중심의 피해자 정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을 요약하면, “피해자중심주의는 마치 피해자의 말이 곧 진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2차 가해라는 말은 피해자중심주의와 결합해 제대로 된 진상조사마저 불가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참고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성폭력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의 문제’ (권김현영 등,2018)




정리하자면, 경향신문이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 논쟁에 대한 충분한 숙의없이 강진구 기자를 징계한다면 이는 여성주의 내부 논쟁에 대한 분석조차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3)해외 권위지 등은 미투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해외 언론들은 미투는 물론 ‘조작 미투’ 사건, 나아가 조작 미투의 사회적 부작용까지 활발하게 취재해 대중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있듯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스테파니 맥크루먼, 베스 레인하드, 앨리스 크라이티스)은 기획미투 사건을 고발해 2018년 탐사보도부문 퓰리처상까지 받은 바 있습니다. 공화당 정치인 로이 무어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제보하러 온 여성 제이미 필립스가 실제로는 언론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는 것을 <워싱턴포스트>는 역으로 고발한 것입니다. 이는 피해호소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되, 취재 과정에서 철저하게 진위 여부를 검증한 미투 저널리즘의 쾌거였습니다.참고 <신문과방송> ‘취재원 제보 약인가 독인가 : 거짓 제보자에 속지 않으려면 기본 원칙을 지켜라’ (2019.8)

 강진구 기자의 취재와 유사합니다.


이외에도 <뉴욕포스트>는 최근 ‘거짓 미투’로 피해를 입은 남성들의 고통을 전하는 보도를 했고참고 <NY Post> 'Being wrongly #MeToo'd has ruined my life' (2020.2.1)

, <포브스>는 “‘거짓 미투’가 많지는 않지만 한번 일어나면 지목 당사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데, 거짓 미투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반여성주의자로 낙인찍혀서 이를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분석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참고 <Forbes> ‘The Dark Side of #MeToo: What Happens When Men Are Falsely Accused’(2020.2.12.)



이러한 점 등을 우려해 해외 권위지 등은 미투 폭로가 나온 직후 폭로자를 지칭하며 ‘피해자’(victim)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피해 호소인’(alleged victim)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또는 ‘고소인’(accuser)등의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미투’ 선언을 촉발시킨 <뉴욕타임스>의 ‘하비와인스타인 미투 폭로’ 사건 기사를 보아도 이러한 관행은 쉽게 관찰됩니다. 참조 <뉴욕타임스> "Harvey Weinstein Is Fired After Sexual Harassment Reports" (2017.10.8.)

 


정리하자면, 강진구 기자의 조작 미투 의혹 기사는 그것이 명백히 허위로 밝혀지지 않은 이상 함부로 징계해서는 곤란합니다. 성폭력 사건 피해호소인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동시에 조작 미투 가능성은 없는지 검증하는 것 또한 언론의 책무임은 국제 저널리즘계의 공통적인 인식의 흐름입니다. 



4)여성주의와 저널리즘은 구분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여성주의와 저널리즘은 구분해야 합니다. 저널리즘은 어떤 사조와도 거리두기를 하면서 이를 공정하게 관찰하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무를 가진 직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강진구 기자를 징계하기 앞서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견해를 너무 과도하게 저널리즘적 판단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 분석이 필요합니다.


해외 권위지 등은 ‘젠더 에디터’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젠더 에디터 제시카 베넷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저널리즘과 여성주의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저널리즘적으로 미투 폭로자의 성폭력 사건은 취재를 통해 확증되기 전까지 없는 것이나 같다”고까지 설명합니다.참조 “How Journalists Corroborate Sexual Harassment and Assault Claims” https://www.wnycstudios.org (2017.12.18.) 

 이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피해호소인의 말을 경청하되, 저널리즘은 이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명(건) 이상의 증인(증거)를 확보해야 미투 보도가 가능하다”는 개인적 원칙까지 그는 설명했습니다.


국내 언론학계에서도 미투 보도 관련한 대립적인 논쟁이 있는 상태이며 강진구 기자를 함부로 징계해서는 안된다는 여론 또한 적지않게 있습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주의’를 넘어 ‘지상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언론에 의한 ‘2차 가해’는 조심해야 하지만,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대원칙을 버려서도 안 된다. 진실 규명을 통해 미투에 대한 혐오나 의심의 시선을 거두어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습니다.참조 <피디저널> '진실 추구'·'피해자 중심주의' 양립 불가능한가 (2020.8.14.)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기자나 칼럼니스트들이 본인의 생각을 적는 것 자체를 막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그 글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거나 문제 되면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자기들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거나 주장하는 것 자체를 막거나 징계하면 기자들이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어 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참조 <오마이뉴스> 경향·서울신문 '미투 반박 보도' 논란, 언론학자들 엇갈린 시선 (2020.8.21)





위와 같은 이유로, 언론인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전 한겨레신문)는 경향신문에 강진구 기자의 징계를 중단해달라고 간곡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강진구 기자가 요청하는 바대로, 경향신문은 강 기자의 기사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충분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없이 벌어지는 기자에 대한 징계는 진실 추구가 제일 원칙인 언론사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폭력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2020.8.27

행동탐사매체 리포액트 대표기자 허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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