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사람 세계 마약퇴치의날에 부쳐... "마약은 퇴치대상 사람은 회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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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484회 작성일 20-06-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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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영화 '커브'의 한장면 갈무리.



어느날 눈을 떠보니 내 몸이 위태로운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뉘여 있습니다. 가파른 곡선의 가장자리에 놓인 몸을 조금 움직이자 금방이라도 아래로 쏘옥 미끄러질 것만 같습니다. 아래에서는 알수 없는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위를 쳐다보니 어떻게든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이 위험한 공간을 빠져나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발가락을 꼼지락 대어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꼼지락 거림에 몸은 다시 또 아래로 살짝 미끄러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든 바둥거려보다가 저 심연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떨어져버려야 할까요. 아니면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까요. 영화 <커브>(팀 에간, 2016)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저는 약물중독과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너무나 잘 묘사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속 공포에 떨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제 2년전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평범한 사람들이 약물중독 따위에 빠지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범죄행위를 꼭 해야 해? 누구나 다 삶은 힘들어. 그 사람들이 다 약물중독에 빠져?' 제가 신뢰하던 한 인권운동가에게서 들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가 쏟아내던 냉소적인 눈빛과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말투를 잊지 못합니다. 약물중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는 우리 사회에서 좌우가 없습니다.


지난 2년은 저에게 악몽같았던 순간을 탈출하는 기간이었습니다. 1년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녔던 기간이었고, 나머지 1년은 좀더 삶쪽으로 분주하게 걸어나왔던 기간이었습니다. 여전히 '말의 칼'을 갑자기 제 가슴으로 쑥 찔러넣어 저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 1년간에는 저를 죽음이 아닌 삶쪽으로 걸어나오도록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늘 26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약퇴치운동본부를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엽니다. 저도 올해에는 참석을 의뢰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기념식의 이름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왜 중독자인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는가. 마약은 당연히 퇴치되어야 하지만, 중독자들도 과연 퇴치대상인가.'


저는 지난 2년간 다양한 중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역시 중독자이고 또한 그 고통을 앓는다는 사실이 그만 아웃팅되어버린 바람에 회사에서도 쫓겨나고 해서, 많은 중독자들이 이미 저의 존재를 알고 의지하듯 말을 붙여옵니다. 감옥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중독자들의 편지도 매주 받고 있습니다. 중독을 직접 체험하고, 수많은 중독자들의 고통을 마주해본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마약은 퇴치대상이지만 사람은 회복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둔 약물정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마약을 퇴치하면 자연스레 중독자들도 치유되겠거니 해왔습니다. 대체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마약을 왜 하고, 심지어 성직자는 물론 기자라는 사람까지 왜 마약에 빠지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마약을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고 손가락질합니다. 약물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약물 정책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몇몇 인권단체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모두 "허재현 기자의 뜻은 알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답변을 듣고 함께 서주는 것을 거절당했습니다. 다들 제 처지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주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독자들의 문제는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중독자들은 혐오의 대상이거나 무관심의 영역입니다. 그러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중독자들이 삶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자살을 기도했다가 안타깝게 살아나버린 사람들의 편지가 제게 계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중독문제는, 인권 문제를 넘어 사람을 살리는 절박한 사회 문제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중독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윤현준 인사랑연구소 중독전문가 등과 손을 잡고 '중독회복연대'라는 조그만 단체를 만든 이유입니다. 


저는 올해 마약퇴치운동본부의 관례적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중독회복연대 회원들과 지역의 중독문제를 고민하는 사회단체와 함께 행사를 갖고 참여했습니다.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나 1시간여 산책하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중독자들은 서로 조금만 대화를 나누어도 마치 습자지에 물젖어들어가듯 금방 그 대화의 주름이 깊어집니다. 그만큼 이 고통스런 경험을 나눌 사람들이 주변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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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중독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산책.
 


이날 알코올 중독으로 20여년을 고생한 제 또래의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도 함께 행사장에 나왔습니다. 어머니도 20년을 함께 고통받으셨겠지요. 그러나 모녀는 희망을 찾고 있었습니다. 중독자인 여성은 무려 8개월째 술을 참고 있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지요. 그게 얼마나 찾아오기 어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는 공원을 함께 걸었습니다.


저는 모녀에게 제 2년간의 '단약 경험'을 전해주었습니다. "8개월간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 제가 너무나 잘 알아요. 너무나 축하드려요. 이제부터 충동도 조금 잦아들고 점점 버티는 요령이 생길 겁니다. 어머니. 따님께서 또 술을 하시게 될 수 있고 어쩌면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절대로 나무라지 마세요. '다시 넘어져도 괜찮아. 그래도 옆에 서주겠다'고 격려해주세요. 중독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질병입니다. 가족과 우리 사회가 이걸 이해해야 중독자들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어요."


마약투약은 범죄입니다. 그러나 중독은 질병입니다. 그래서 중독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온 많은 다른 나라들은 이제 마약투약을 비범죄화의 영역에서 연구하고 정책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건 도로교통법 규제 대상입니다. 그러나 신호를 위반하는 건 실수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신호를 위반했다는 것만으로 형사처벌하고 직장에서 해고하지 않습니다. 대신 벌점을 주고 자꾸 실수가 반복되면 교육을 하지요. 이게 비범죄화 정책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단순 마약투약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접근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 제도를 도입한지 20여년이 되어갑니다. 그렇다고 포르투갈이 마약천국이 되었다는 평가는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많은 중독자들과 함께 질문을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길을 걷고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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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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