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칼럼] 왜 이용수 할머니는 언론이 검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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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3,697회 작성일 20-06-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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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5월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용수 어른이 촉발시킨 사회적 논쟁

언론은 정치인 검증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검증의 증거나 증인에 대한 검증의 의무 또한 있습니다. 제보자가 지목하는 대상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그전에 제보자 자체를 검증해야 함은 취재의 기본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7년 미국 공화당의 한 유력 상원후보에 대한 성추행 의혹 제보를 받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피해자라는 자의 말을 빌어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이후 제보자에 대한 검증 또한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제보자가 보수단체와 짜고 진보언론을 곤란에 빠트리기 위해 함정을 판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제보자의 허위제보 과정까지 모두 보도했고 결국 2018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수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그러나 지금 어떤지 살펴봅니다. 지난 25일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를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고생시키고 이용해 먹었다. 생명 걸고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대협이 쭉 이용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이용해 시민단체가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제기여서 많은 언론들이 윤미향 의원에 대한 검증보도를 쏟아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빗발치는 비난 여론의 시발이었습니다.


윤미향 의원은 이제 정치인이기 때문에 언론이 일정 정도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초점을 맞추어 검증 보도를 이어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의 시발점인 이용수 어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도 역시 언론의 관심사여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이용수 어른의 말은 누구도 검증하려 들지 않습니다. 윤 의원 쪽은 이용수 어른과의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려고 모든 것에 침묵하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용수 어른의 말은 무조건 참이고, 윤 의원은 침묵하는 의혹의 대상으로 언론이 간주해 버리고 맙니다. <윤미향, 정치 후원금 모금 나서...통합당 "당혹스럽다">는 보도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이유입니다. 


저는 한번쯤은 이용수 어른의 말에 대해서도 검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핵심은 △김복동 어른이 과연 아무것도 모른 채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에 의해 각종 행사장에 끌려다닌 것이 맞는지, △후원금의 사용처도 모른 채 각종 모금행사에 이용당한 것인지 맞는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겠지요. 김복동 어른께 물어보면 되지만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라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김복동 어른의 모습을 오랜 기간 영상으로 찍어온 촬영자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의 양해를 얻어, 김복동 어른의 평소 모습이 담긴 수년간의 미공개 영상을 확보해 샅샅이 살폈습니다.


영상에는 김복동 어른이 해외 곳곳 증언을 다닐 때의 모습, 윤미향 대표와 언론 인터뷰 내용 등을 사전 상의하는 모습, 후원금 사용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수년 치의 영상을 모두 확인한 제 느낌은 이러했습니다. 



김복동은 끌려다녔다? …위안부 운동의 온화한 리더 김복동

김복동 어른은 어디서든 존엄을 잃지 않았고 윤 대표와 모든 것을 상의하는 듯 보였습니다. 김복동 어른은 윤미향 대표를 딸처럼 아끼고, 자신을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로서 위치지움하게 한 동료라고 인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식적으로 윤미향이 단체의 대표이지만 활동의 중심에는 김복동 어른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김복동 어른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재일조선인 학교 학생들을 돕는 '김복동의 희망' 재단 등을 만들 때, 윤 대표도 자신의 후원금을 보태며 "(김복동) 어른께 부끄럽다"고 말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김복동 어른은 윤미향 대표에게 희생정신을 가르치는 스승의 모습을 띄기도 했습니다. 해외 증언대회를 다녀오면 무척이나 몸이 상하는데도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힘을 얻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김복동 어른은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이끌고 있었고 윤 대표는 그를 보좌했습니다. 고인이 되기 전 병실에서 김복동 어른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미향 대표 덕이니 윤 대표도 상을 받게 해달라"고 유언을 남기듯 주변인들에게 말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찍힌 장면들이어서 미공개 영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복동 어른이 고인이 되었을 때 윤 대표가 "거짓의 눈물"을 흘렸다고 이용수 어른은 주장했지만, 그렇게 볼만한 단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이용수 어른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윤 대표를 비난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용수 어른을 잘 아는 시민단체 활동가를 접촉해 이용수 어른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노컷뉴스>가 지난달 27일 보도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전, 저는 윤미향 대표가 과거에 이용수 어른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했다는 것을 파악하 바 있었습니다. 다소 이용수 어른이 불쾌하게 느낄 만한 윤 대표의 발언까지 들어있는 통화 녹취록도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가, <노컷뉴스>가 이 사실을 보도하기는 했지만 역시 이용수 어른이 이렇게까지 폭로에 나설 만한 윤 대표의 비위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윤미향 대표와 이용수 어른과의 사적인 감정의 문제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쯤은 김복동 어른의 시선에서 윤미향 의원을 설명하는 보도를 할 필요가 있겠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김복동 어른과 다시 나눈 인터뷰 “윤미향 대표 상받게 하는 게 내 소원" http://repoact.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150> 리포액트 기사입니다. 형식은 가상 인터뷰였지만, 온전히 김복동 어른이 실제로 한 말들만 편집해 가공했기에 실제로 인터뷰를 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용수 할머니를 음모론에 빠트린 책임, 언론에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1일 SNS에 "문재인 대통령이 이용수님이 내는 목소리에 정면으로 응답했어야 한다"고 글을 남겼습니다. <한겨레>는 이용수 어른의 기자회견 직후 "이제 윤미향이 답할 차례다"라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취재결과는, 만약 김복동 어른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이용수 어른의 문제제기가 이런 방식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조차 회의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용수 어른에 대한 인신공격과 배후설 등은 당연히 문제이지만, 일부 대중의 그러한 불편한 감정은 언론의 차분하지 못한 경주마식 보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용수 어른의 문제제기는 활동가로서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소비하는 언론의 방식이 대중의 불필요한 대립을 더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말입니다. 진보·보수 언론 구분 없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인상입니다.


<한국일보>는 최근 "대구서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 중심 시민단체 '아이캔스피크' 출범한다"는 제목의 단독보도를 했습니다. '정대협'이 피해당사자 중심 단체가 아니었다는 단정적 판단이 담겨 있는 이 기사는 그러나 지금 삭제되고 없습니다. 새 단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용수 어른과 아무런 상의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단체였던 것 같습니다. 이용수 어른 쪽이 항의했는지 기사는 없어졌습니다. 당사자 중심 시민단체를 만든다는 세력이 당사자와 논의도 안 하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언론에 제보를 하고 언론은 검증과정 없이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촌극인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최근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라는 연재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14일 <경향신문>은 "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 비판·성찰 사라져"라는 제목으로 (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연구 방식을 비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의 말로 <경향신문>은 "연구자들은 할머니 인터뷰부터 기초 자료까지 모두 정의연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정의연이 곧 피해자이자 한국 입장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정의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했다"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그러자 당장 SNS에는 한 연구가가 2004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가 발간한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서론부분을 발췌해 <경향신문>을 반박했습니다. 이미 정대협은 십수년 전부터 민족주의 관점 밖의 위안부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부분에는 이렇게 써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동원과정만을 부각시켜 일본군 ‘위안부’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간“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 민족담론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경험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거대담론 아래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은 이를 보고 "대체 지난 30년에 대해 철저한 고민과 조사도 안 해 보고 며칠간의 가벼운 취재 끝에 '위안부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저 놀라운 오만함은 어디서 나올까. <경향신문>이 반일종족주의 등에 나오는 내용과 대동소이한 프레임을 전파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대협이 삼성과 같은 거대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다른 시각의 연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인지 <경향신문> 보도 안에 근거는 없습니다.


이용수 어른의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에서 적정하게 소비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언론의 책임으로 분석됩니다. 우리 언론이 너무 한쪽의 일방적 문제제기에 기대어 정치인 검증에 나서는 것의 부작용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입니다. 조국, 최강욱, 황운하, 윤미향 등 시작은 매우 떠들썩했으나, 현재 뭐하나 뚜렷하게 사실로 확인된 비위가 없습니다. 정치인 검증에 당연히 여야는 없어야 하지만, 검증의 단서들이 너무 편향적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언론의 자기 검열은 그간 얼마나 깊었었는지 의문입니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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