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김복동 어른과 다시 나눈 인터뷰 “윤미향 대표 상받게 하는 게 내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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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4,225회 작성일 20-06-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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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화 '김복동' 갈무리. 2018년 10월 오랜만에 수요집회에 참석한 고 김복동 할머니(왼쪽)를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오른쪽)가 바라보고 있다.



기억의 조각들이 한 개인의 인생과 관계들을 대표해버렸습니다. 분절된 기억들은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했고 마치 원래부터 그런 모양이었던 것처럼 툭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어디를 자르고 어디를 붙여야 할까요. 흩뿌려진 조각들을 한데모아 다 이어붙이기 전에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윤미향이 김복동 할머니를 이용하고 끌고 다니면서 고생시켰다. 뻔뻔하게 묘지에 가서 가짜의 눈물을 흘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오랜 기간 인권 운동을 해 온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달 25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내용은 세상의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습니다.  그것이 이용수씨만의 기억의 조각, 일부였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윤미향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복동 할머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김복동 할머니의 뜻과 달리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는 말이어서 많은 언론들이 대서특필했습니다.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쪽은 그저 "안타깝다"는 말로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는 반응을 아꼈습니다. 위안부 운동에 대한 이용수 할머니의 오랜 기여를 존중해, 상처내기식의 대응을 자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만의 기억을 온전한 실체이자 운동의 전부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옳을까요. 수많은 주관들의 총합을 객관으로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사진 한장에 의존해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어떤 세계를 다 안다고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네모난 피사체에 다 담기지 못한 거대한 풍경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에 담기지 못하는 바람과 공기의 질량은 또한 어떻고요.


허재현 기자는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했던 고 김복동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김복동 어른이 담겨있는 풍경의 조각들을 최대한 수집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해 1월 별세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위안부 운동에 대해 평소 어떤 말들을 남겼고, 무엇을 하셨는지를 담은 10년치의 미공개 영상과 자료들을 입수해 분절된 조각들을 이어붙였습니다.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평가를 김복동 어른으로부터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조각들을 다 이어붙이자 김복동 어른께서 마치 다시 살아나신 듯 허재현 기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반갑게 그를 마주하여 앉았습니다. 고 김복동 어른과 나눈 가상의 대화를 정리해 옮깁니다. 모든 말들의 조합은, 실제 고 김복동 어른께서 하셨던 발언을 바탕으로만 구성했습니다. 최소한의 선에서 일부 표현을 윤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윤미향은 내 딸같은 존재. 가슴이 아려와" 


-어르신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요즘 정의기억연대 등과 관련한 여러 논란이 일고 있고, 이용수 어른께서 나서서 여러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해 김복동 어르신의 견해도 국민에게 소개되어야 할 것 같아서 부득이 제가 나섰습니다.

=내 남은 평생 전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한 것이 '증언'입니다. 괜찮습니다. 부담없이 물어보십시오.


-먼저 윤미향 의원과 어르신이 실제로 어떤 사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사이였는지는 잘 알지 않소? 수많은 목격자가 있고 남겨진 영상이 있고 나를 인터뷰해서 쓴 책도 있는데.


-네. 안그래도 모두 다 참조하였습니다.

=우리 대표가(윤미향) 내 딸과 같은 존재지. 대표 남편(김삼석)도 그렇고 다 내 집안 사람이나 다름없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즈그들도 다 하고. 집안이 어떻다 하면 서로 걱정도 하고. 대표가 정대협 간사로 일할 때 20대 초반부터 부산 우리 집에 놀러와서, 회먹고 술마시고 춤추고 안놀았나. 지는 춤도 잘 못추는데 나 기쁘게 하려고 술만 먹으면 "할매, 우리 춤춰요!" 하는 기라. 하루는 남자 둘하고, 강덕경(위안부 피해자)이 하고 넷이서 부산 우리 집에 놀러온 기라. 그중 멀대같이 키가 큰 젊은이랑 대표가 결혼한 거야. 그 이가 김삼석 아바이(*할머니는 아바이라고 부르곤 했다)라.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윤 의원과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셨던 건가요.

=내가 1992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일본군 위안부 한 사람 신고하라는 방송을 하는 기라(*1991년 고 김학순씨가 첫 위안부 피해 증언). 거기 나온 전화번호 얼른 적어놨다가 전화를 했어. 부산 김회장이 전화를 받았지. 김 회장이 나와 연결돼서 같이 증언하러 다니고 했어. 김 회장이 내 책을 써서 오사카 박물관에 꽂아 논 기라. 내가 오사카 박물관 가서 보니 제10육군병원에서 간호원 할 때 찍은 내 사진이 걸려 있는 거야. 윤미향 대표가 그걸 보고 나를 찾아와서 다시 서울에 신고하라고. 그래 윤 대표랑 인연이 됐지.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서울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는 어떻게 사시게 된 건가요.

=2009년 12월 윤 대표가 갑자기 부산 사하구에 왔다며 전화가 왔어. "할매! 저 부산에 왔는데 뭐 사갈 것 있어요?" 하더라고. 몇달 안봤는데 너무 보고 싶더라고. 윤 대표는 내가 말랐다고 걱정이 한 가득이야. 내가 자고 가라고 붙들고 그랬어. 2010년에 따르릉 전화가 한번 더 오더니 귀에 익숙한 목소리야. "누고?" 하니 전화기 너머로 "할매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면서 내 집으로 오대. 우족을 사와서 고와주더라고. 윤 대표랑 그간의 이야기 풀어놓으니 와 그리 금새 시간이 가노. 이제 그만 가봐야 한다고 일어서는 기라. 어찌나 헤어지기 싫던지. 그래서 그냥 서울에서 윤 대표랑 같이 살기로 했지. 내가 그때 여든살 되던 해인데 혼자 살고 눈도 잘 안보이고 하니까. 서울 쉼터에 길원옥 할매도 있고 손영미(*지난 6일 자살)도 있고 서로 좋아서 팔짝팔짝. 손 소장이 나랑 동향이거든.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같이 사시는 동안 윤 대표는 할머니께 어떻게 대하셨나요.

=손영미는 우리랑 살고 윤 대표는 쉴 새 없이 쉼터에 왔다갔다 했어. 할매들 주름살 없어진다고 마스크 팩 해준다고 하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냉큼 누웠지. 윤 대표랑 소장이랑 합창을 했어. 팩하니까 내가 이뻐졌다고. 주름살이 쏘옥 들어가 한참이나 젊어졌다고. 

대표는 내가 밥은 잘 먹나, 약은 빼먹지 않고 잘 챙겨 먹나. 잠은 잘 자나 감시했어. "할매! 건강히 오래만 사세요!" 맨날 나만 보면 그 소리야. 대표랑 소장은 내 딸이야. 고마워서 가슴이 늘 아려.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손영미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10일 장례 치렀으니 나한테 오고 있을 걸. 10년 동안 내 수발 들었으면 됐지 뭣하러 또 나한테 이렇게 일찍 오나. 내가 또 단무지 없이 자장면 먹을까봐 가위로 단무지 잘라주려고 오나. 영미 소장은 나랑 양산 한 고향 사람이라.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가운데. 내가 정주어도 쉼터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버렸지만 영미 소장은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았는기라. 내가 절대로 어디 가지 말라고 했었다. (미공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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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고 손영미 쉼터 소장(왼쪽 위)은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왼쪽 아래) 곁에서 늘 보좌했다. 




"모금한 돈을 왜 나한테만 쓰노? 나도 내 전 재산을 모금에 보탰다"


-조선일보가 김복동 장학금을 윤 대표의 딸을 위해 유용한 것처럼 기사를 썼는데.

=손주가 대학간다 그러니까 할매가 되어서 당연히 학비 대줘야 하는 거 아니가. 그걸 어찌 그렇게 기사를 쓰노. (미공개 영상)


-윤미향 의원이 김복동 할머니의 의사에 반해 곳곳에 데리고 다닌 적은 없는지요.

=기자 양반.


-네.

=내가 미국에 강연회 갈 때 찍은 영상을 보여줄테니 그걸 한번 보소.


김복동 할머니는 기자 앞에서 영상을 틀어주었다. 새벽 다섯시 이십분. 마포 쉼터에서 잠을 청하던 할머니가 잠에서 깬다. 손가락으로 양 눈썹을 가다듬고 양 눈가를 다독인다. 서랍장 위에서 초록색 유리병을 찾아 집어들고 방을 나선다.


욕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 있는 할머니. 할머니는 초록 유리병에 든 머릿 기름을 손바닥에 따르고 양 손바닥에 골고루 묻힌다. 양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긴다. 한 올까지. 머리 오른 편에 장난감 왕관처럼 작고 빛나는 핀을 꽂는다. 할머니의 귀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약을 챙긴다. 인사돌, 아로나민골드, 진통제. 벽장문을 연다. 손을 깊숙이 넣어 자개보석 상자를 꺼낸다. 상자 뚜껑 안쪽에 달린 거울에 할머니 얼굴 조각이 담겨온다. 상자에서 흰 자개 목걸이를 꺼내 목에 건다. 금반지를 꺼내 왼손 장지에 낀다. 옥팔찌를 꺼내 왼손 손목에 두른다. 살구색 블라우스를 입으며 "머리가 제대로 빗어졌나?" 

(책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내가 어떻게 보이시는가. 미국에 끌려가는 사람 채비 같소? 

-자발적으로 해외 증언 가셨다는 거죠?

=윤 대표는 나를 데리고 다닌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마다 윤 대표가 나를 보좌한 기라. 미숫가루 만들고 꿀도 준비하고. 말조옷빵(*할머니는 바게트빵을 평소 이렇게 불렀다) 사오고, 내 휠체어 다 밀고 댕기고. 내가 이렇게 일본 정부한테 사과받는 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그냥 가슴에 묻고 사는 게 나았을까 후회하기도 해. 마음이 왔다갔다 하지. 그래도 용기를 냈던 건 윤대표랑 정대협 덕분이야. 억만금을 주어도 못바꾸지. 내가 그라칸다. 천상에서 이런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라 내려보냈나. 윤 대표랑 미국 호텔방에서 같이 미국 국기 펼쳐놓고 춤추고 했다. 참 행복했다. (미공개영상)


-미국에 평화의 소녀상 설치하는 것도 할머니 의지였나요?

=내가 미국 가기 전 손영미 소장 시켜서 검은 천에 흰 저고리 달린 치마를 맞춰달라고 해서 그거 입고 갔어.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입었었거든. 2013년 (미국 글렌데일시에) 처음 소녀상 세웠는데 그건 내 모습 그대로야. 미국 기자가 나한테 물었지. 소감이 어떠냐고. "과거에 내가 나이 어려서 끌려갔던 그런 마음이 든다"고 말했어. 내가 출장 다니면서 결심이 더 강해졌어. 독일에 가서도 그랬다. 아베가 사과 안하면 내가 전 세계로 돌아다닐 거라고. 내가 그 자리 앉아있는 거만으로도 주변에서 힘을 느끼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해야 해. 어찌나 열심히 돌아다녔는지 외국 갔다가 스물 하루만에 돌아왔던 어느날 부터 눈이 가버렸어. 영화 <김복동> 보면 다 나와.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미공개 영상)



-출장 경비는 어떻게 마련해서 다녔나요? 모금한 돈이 할머니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의혹제기도 나왔는데.

=비행경비는 온라인으로 OO(시민기자)가 모집해서 모았어. OO도 내 손자나 다름없어. 내 나이 많다고 비즈니스석을 끊어줬어. 덕분에 발 뻗고 잘 갔다 왔는데 뭔 소리들을 하노? 그리고 모금한 돈을 왜 할매들한테 다쓰노? 그건 평화활동가 양성하는 데도 써야지. 2015년에 내가 쌈지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제. 내가 평생 모은 돈을 그렇게 쓰면 더 좋은 거지.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미공개 영상)



-정의기억연대가 나비기금 등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우리 소장은 나랑 같이 살면서 심부름 시키면 10원 한장도 남으면 다 내놨어. 성질이 그래. 그러니 같이 살았지.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가도 소장은 내가 나 죽을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있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같이 살았어. 내가 자꾸 내 재산을 기부하니까 대표도 덩달아 재산 기부하고 그랬어.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미공개 영상)



-할머니께서 별세 하기 전 남은 전 재산을 재일조선인 학교 학생들 장학기금으로 기탁하셨습니다. 이것도 본인 의지로 하신 건가요.

=내가 이상하게 아이들만 보면 울음이 나. 일본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애들이 왜 나빠. 공부못하면 나같은 꼴 나거든. 그런데 아베가 그 (재일조선인) 아이들 학비(국비지원 수업료)를 안줘. 그래서 한 아이라도 지원해보자. 다른 재산 딱딱 긁어갖고는 밑천 삼아서 재단을 만들었지. 대학가기 전까지 돈 걱정 안하도록. 내가 (재일조선인) 애들 손 잡고 그랬어. "좌절하지 마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미공개 영상, 영화 '김복동')



-재일 조선인 아이들을 특히 걱정하셨던 이유가 뭔가요.

=내가 조선 사람이니까. (미공개 영상)



-그렇게 전 재산(5천만원) 기부하시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기분 만점이었지. 이렇게 다 모여가지고 쓰잘 거 없는 나를 받들어서 이래 해주니까 고맙고 너무나 안쓰럽고.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았지. 아베는 쪼다야. 내한테 진기라. 나같은 바보한테 진기라. (미공개 영상)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 대해서도 진실공방이 일었습니다. 합의 과정을 윤미향 의원은 사전에 알았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때 외교부 책임자가 쉼터로 찾아왔어요. 나랑 이용수랑 길원옥도 같이 있었지. 우리가 불같이 화를 냈어. 협상을 하기 전에 우리 얘기를 왜 미리 안듣느냐고. 그러니까 우리한테 하는 소리가 "미리 말씀 못드린건 연휴기간에 갑자기 진전이 이루어져서 말을 못했다"고 하더라고. 그냥 우리한테 "송구하다"고 했어. 만약 윤미향 대표하고 외교부가 따로 상의하고 그랬다면 우리한테 그자리에서 "윤 대표랑은 사전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하지 않았겠소? (미공개 영상)



-듣고보니 그렇네요. 그당시 합의금을 받고 끝내자고 주장했던 할머니도 계셨나요?

=그런 할머니들이 있긴 있었지. 그렇게 받지 말라 했는데 그 뒤꽁무니로 살살 받고. 하지만 쉼터에 살던 우리들은 돈 안받았다. 우리는 돈 한푼 받으려고 해온 게 아니라. 돈 돌려줘버려야 우리가 큰 소리 친다. 나는 공짜를 안좋아해. 그때 우리 찾아온 외교부 책임자에게 이용수가 더 크게 떠들었다. "아베가 정식으로 사과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고. 이용수는 나라에서 생활비 주는 것도 반대했었다. 저 세상에 있는 할머니들도 우리랑 같이 지금 투쟁중이라고. 나는 설사 돈 받게 되더라도, 외로운 사람들 다 줄거라고 결심했었다. (미공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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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근혜 정부 외교부 책임자가 위안부 쉼터를 찾아 할머니들에게 한-일합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미공개 영상.

 



"수요집회 나와준 국민들에게 고마워...할매들이 집회 나와야 정부가 일해"


-윤미향 대표가 국회의원 출마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만 잘 살 수 없어. 내가 이래 한발짝 한발짝 걸어 나간 거도 윤 대표 덕으로 내 이름을 날린 거야. 나는 대표도 상금 탈 수 있게끔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했어. 늘 내만 생각해주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표 없으면 없는 기라. 대표의 힘 덕에 내가 이렇게 받들어 나가고 한 건데. 우리가 30년을 그렇게. 기자 양반이 대표 상좀 타게 해줘요. (미공개 영상)



-수요집회 중단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수요집회 나가는 국민들께 진짜 고마워요. 내가 몸이 안좋아져서 2018년부터 잘 못나갔거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할머니들이 나가서 뭔가 얘기를 해야 해결이 나지. 우리가 감감하면은 결국 정부도 감감해진다고. 우리가 떠들면 좀 다른게 나오는데. 한국 정부는 믿을 수가 없는 기라. 처음에 (선거) 나오기 전에는 저 사람이 되면 꼭 우리들 일 해결 지어줄 사람이다 생각했는데 당선되고 나면 변소 갈 때 나가고 그럴 때처럼 달라져. (미공개 영상)



-아베가 아직도 할머니들께 사과를 안합니다.

=아베가 인간이면 인간답게 탁 깨놓고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해야지. 안그렇다면 앞으로의 일본이 어떠한 일이 닥칠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나라도 남북 통일이 되면 '엥간한' 나라 못지 않게 크다고. 아베 따위. 굳세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서로가 손잡고 씩씩하게 일어나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미공개 영상)



-긴 시간 인터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에서는 안아프세요?

=여행가고 싶어.

-어디요?

=워싱턴!

-거기는 왜요?

=나비의자에 다시 앉고 싶어. 2014년에 거기 처음 앉았을 때 내 겨드랑이에서 하얀 날개가 솟았거든.

-할머니는 참 위대해보이세요.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라는데. 내가 나를. 내 몸이 작지. 내 몸이 참 작아. 내 뒤에 아무도 없어.   

-혹시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 음...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곱게 자라서 공부 많이 해 없는 사람 돕고 살며 이름을 날리고 싶어.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책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마지막으로 저희 후손들에게 말씀좀 해주세요.

=(정의기억연대에) 협조해주세요. (나비기금) 후원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활활 날라서, 더 멀리 더 높이 희망을 전했으면 좋겠어요. 김복동 여성 평화상 수상자들 계속 응원해주세요. 문재인 대통령께도 아뢰오. 김복동이가 소원이 있습니다. 후원좀 해주세요. 일본에 있는 사람들도 진짜 힘내세요. 저승에 오니 이제 몸이 안아프네. 아베 모가지는 내가 자를게요. (미공개 영상, 한겨레TV 인터뷰)

 



<참조>

영화 '김복동'

<한겨레TV> 영상 인터뷰 

김복동 관련 각종 미공개영상

책 'Rememeber Her1 김복동'

책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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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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