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TV [시사바리스타] 노무현 대통령을 잃고 거리에서 얻은 깨닳음 그리고 진보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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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5,549회 작성일 20-03-2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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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석 선배님께.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허재현 기자라고 합니다. 한번도 뵌 적이 없어서 저라는 기자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에서 근무하다 뜻하지 않게 그만 큰 실수를 저질러 책임을 지고 퇴사한 뒤 2019년부터 독립매체 <리포액트>를 꾸려 이런저런 기사를 쓰고 있는 후배 언론인입니다. 저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다시 기자로서 뛸 기회를 준 우리 사회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그런 '흠결많은 기자'입니다.


선배께서 쓰신 '검용언론 기자님들 전상서'를 잘 읽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너무나 우리 <한겨레>·<경향>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만, 제가 우리 언론계에 끼친 누가 너무나 커서 말을 아끼고 그저 속을 태우고 있었던 와중에 선배께서 이렇게 글을 써주시니 얼마나 감사함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이 자리를 빌려 강기석 선배께 우리 후배들을 대신해 공개 답신을 써보고자 합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올해로 14년차 기자입니다. 더이상 어리지도, 연로하지도 않은 '허리 연차' 시기를 보내는 그런 기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진보언론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의 생각도 이해하고 있고, 후배들을 질책하는 선배들의 생각도 함께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 결론은 우리 후배들이 저널리즘적 사명감이 너무 앞서 현 시점에서 판단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기자로서의 순수함과 열정을 또한 폄훼하지 않습니다.


선배님. 저역시 선배처럼 '윤석열 장모 의혹'을 진보언론들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겨레 법조팀에서 검찰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선배의 분석처럼 '타사에 물 세게 먹은 것에 속상해' 아무 보도도 하지 않는다면, 저라도 나서서 취재를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제 이름으로 굳이 보도하기보다는 취재한 내용을 그대로 한겨레 편집국에 우편으로 보내줄 계획이었습니다. '취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인지 아닌지' 베테랑 기자가 판단만이라도 해서 보내주면 그들이 다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의도였습니다. 


이 사건 관련자에게 지난주 접촉해보니 다행히 한겨레 기자를 만나기로 했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아는 아주 유능하고 결이 좋은 한겨레 후배기자(최우리)가 며칠 뒤 후속보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한겨레는 윤석열 의혹에 대해 함께 붙어 취재하기로 결심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에 대해 더이상의 취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향은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좀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선배님. 저는 한겨레 등 진보언론에서 일하는 믿음직한 동료·후배들과 이런 저런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시민사회가 좀 오해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저널리즘적 순수함과 사명감을 내려놓고 있지 않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권력감시'라는 사명을 말입니다. 권력을 열심히 감시하는 자신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는 것에 억울함을 느끼고, 저역시 심정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선배님. 저역시 한겨레 근무하면서 '기레기'라는 평가를 외부에서 자주 들었던 기자입니다. '가난한 조중동' 같은 곳에서 일하는 기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분통 터지기도 했습니다. 10년 넘는 기간동안 배가 홀쭉한 월급통장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우리 주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는데 결국 남는 건 '기레기'라는 평가인가 하면서 속상해했습니다.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2018년 봄 '드루킹 사건'을 최초 보도한 기자입니다. 기사가 나가기 전 회사 선배는 걱정이 되는지 제게 묻더군요. "너, 괜찮겠냐? (특정 집단으로부터) 기레기 소리 또 들을텐데." 저는 1초도 고민 안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건 기자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오로지 중요한 건, 내가 취재한 것이 얼마나 팩트에 가까운지, 그리고 교차검증 끊임없는 교차검증이었지요. 역시나 보도가 나간 뒤 저는 수많은 비판 메일과 조롱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제 보도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선거판을 기웃거리며 정치인들에게 선거브로커 행위를 하는 '선거 상인'들은 투명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색출해 고발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는 시민 사회가 걱정하는 '기레기류'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또한 저는 진보언론 기자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 또한 발견하고 있습니다. 권력감시라는 사명감을 청와대 감시에만 맞추고 있는 것의 오류입니다. 촛불혁명으로 우리 시민 사회가 정권을 교체한 것은 맞지만, 그 정권 교체가 정말 권력 교체로 연결되고 있는지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문재인 정권은 아직 교체되지 않은 우리 사회 미시권력(검찰,보수언론,재계)에 둘러싸여 손발이 묶여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전 법무장관 및 그 가족이 받고 있는 온갖 혐의는 법원에서 정당하게 판결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맞닥뜨린 '조국 정국'은 분명 개혁에 저항해 문재인 정권을 흔들 기회만 엿보던 검찰권력에 의해 조장된 사회현상이 아닌지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검찰의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 검찰 출입기자들을 '선한 괴물 기자'라고 표현 한 바 있습니다. 그 표현 때문에, 한겨레 강희철 법조선임기자로부터 명예훼손 혐의 고소까지 당한 상태이지만 저는 그 표현에 대해 미안해 할 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기자들이 권력 기관에 쉽게 이용당하는지 깨우쳐 경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순수한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알기에 '선한' 괴물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 경향 법조팀의 유희곤 기자도 자신이 어떻게 검찰 권력에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선한' 친구일 겁니다. '나는 국정농단 사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권력 감시를 하고 있다'는 그의 언론 인터뷰에서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역시 한겨레 법조팀에서 근무하던 때 검찰 수사속보경쟁에 밤낮 시달리며, 곰비임비 '검찰에 잘보이고 싶은 검용기자'가 되어가는 제 모습을 보고 놀란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진보언론 법조기자들의 문제를 바꾸려면 기자 개개인의 성향을 지적할 게 아니라, 그들이 친검 성향을 띌 수 밖에 없는 보도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지금도 한겨레 법조팀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과연 저라고 다를 수 있을까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선배님의 글에는 이 분석이 빠져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설명을 드려보았습니다.


선배님.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비교적 신입기자여서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슬픈 감정을 온몸으로 부딛히며 취재해야 했습니다. '검찰의 노무현 죽이기'에 동참한 진보언론을 원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처음에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하여 부패의혹에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진보언론 기자에게 정녕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이란 말인가.' 저는 고민했습니다. 그냥 한겨레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거리에서 저를 부둥켜 안고 울던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눈물을 훔쳐주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통스런 경험은 지금의 허재현이라는 기자를 만든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에 눈을 떴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각종 의혹이 터져나온건, 그의 의혹 자체가 아니라 그 의혹을 '꽃놀이패'럼처럼 쥐고 암약하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권력 탓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는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잃었다는 슬픔, 그리고 아직 우리 사회의 진짜 권력을 교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뒤엉킨 감정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봉하마을에 내려갔습니다.  김경수 당시 대통령님 비서관의 소개로 노무현 대통령께서 걷던 봉하마을 인근 산책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길을 혼자 걸으며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말을 청했습니다. '대통령님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비위를 쫓던 기자는 아니지만, 당신과 관련해 터져나오는 여러 의혹들에 불편함을 느끼던 기자였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목도하고 가슴을 치는 시민들과 온전히 감정이입하기 어려워 힘들어했던 기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을 잃은 슬픔을 국민으로서 공감하고, 저 혼자만의 장례를 치르려 합니다. 제 마음 속에서 편하게 떠나십시오.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통령님. 당신께서 가졌던 허물은 우리 사회가 평가할 것입니다. 동시에 당신은 희생된 게 맞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던 검찰 권력이 가해자입니다. 우리 기자들은 검찰에 이용당한 거였습니다. 당신같은 비극을 우리 사회가 다시 겪지 않도록, 검찰 권력을 제가 감시하겠습니다. 제게 할 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제가 겪었던 이때의 감정과 깨닳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청했던 혼잣말 등을 한겨레 후배기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고 퇴사하게 된 것을 지금도 안타깝게 여깁니다. 어쩌면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벌어졌던 그 참담했던 진보언론의 오류를 잘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조국 수사를 대하는 한겨레 선배기자들의 조심스런 태도가 이해가 안돼,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일 겁니다. 저같은 연차의 기자가 후배들에게 해줄 얘기를 제대로 못해줘, 이런 지경까지 오게된 것 아닌가 싶어 자책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의 대자보를 보고, 저는 한겨레 몇몇 선배들에게 '왜 후배들에게 과거의 오류로부터 얻은 경험을 가르쳐주지 않냐'고 따져도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부끄럽다'는 대답이었습니다. 한겨레에는 선배라고 하여 후배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듯 훈계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저는 2017~2018년 입사한 한겨레 신입 후배기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경찰청 바이스였습니다. 후배들에게 기능적인 교육만 시켰습니다. 기사를 어떻게 하면 잘 쓰고, 어떻게 하면 취재원과 친해지고, 취재의 벽에 부딪힐 때 어떻게 돌파하면 되는 지 따위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로서 가져야 할 사명감과 세계관은 어차피 기자 개인이 각자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선배가 꼰대처럼 가르쳐준다거나 이끌어주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은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정말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정말 배움의 의지가 크고 기자로서의 결이 고운 후배들이어서 저역시 이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후배들에게 정말 가르쳐줘야 할 것을 안가르쳐주고 만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겪었던 저 경험과 성찰에 대해 단 한마디도 전해주지 못한 것이지요. 어쩌면 지금 한겨레 후배들이 보여주는 저 판단의 오류들에도 일부 제 책임이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낍니다. 제가 지금은 선배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후배들에게 전화조차 못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털어놓는 제 경험을 한겨레 후배기자들이 꼭 읽어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사 후배이지만 유희곤 기자도 마찬가지이고요.


마지막으로 우리 시민사회에도 그러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진보언론이 잘못 한다고 하여, 그들을 버리고 대안언론만을 추종하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습니다. 지금의 대안언론들중 일부는 특정 정치진영의 목소리만 전하는 경우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또다른 '애꾸눈'으로 만들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진보언론의 오류를 짚되, 대안언론과 함께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허재현 기자가 한겨레 바깥에서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해서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라도, 저는 한겨레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에 그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특정 집단을 대체하기에는 흠결이 너무나 많은 기자입니다.


강기석 선배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선배의 고견이 앞으로도 많이 필요한 시대같습니다. 우리 진보언론이 '검용언론'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저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허재현 드림.


출처 : 평화나무(http://www.logo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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