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저널리즘 연구 <뉴욕타임즈> 젠더 에디터 “저널리즘적으로 당신의 강간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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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6,290회 작성일 20-08-20 16:56본문
<편집자주>
'박재동 화백 미투 사건' 의혹제기를 한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징계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이 각자의 견해를 설명하지만 정작 해외언론의 미투 보도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분석한 게 없습니다. <리포액트>는 <뉴욕타임즈> 젠더 에디터인 제시카 베넷이 전하는 미투사건 취재 노하우를 직접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미투 보도란 무엇이며 우리 언론은 어떤 원칙을 세워가는 것이 맞는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봅니다. 아래는 제시카 베넷의 글중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해석한 것이며, 허재현 기자의 의견을 첨부합니다.
1.최소한 두개 이상의 증거(둘 이상의 증인, 둘 이상의 증언 등)
However, in order to publish these stories, each woman also had to be corroborated by at least two other sources, she says, which lead her to speak to at least 27 different people for one report. (미투 보도를 위해, 최소 둘 이상의 증인을 확보해 제보내용 신빙성을 검증했다. 최근 한 극작가에 대한 미투 보도를 위해 27명의 사람들을 만나서 물었다.)
>>허재현 의견. 우리 언론은 피해호소인의 이야기만 듣고 단정하듯 피해사실을 확정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 최근 <한겨레> 젠더 전문 기자와 <KBS> 앵커 모두 '박원순 서울시장 미투 사건'을 보도하며 "피해자" 용어를 쓰고 있다. 양쪽의 다툼이 있는 사안에서 섣불리 한쪽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라면 매우 신중해야 하는 행위. 언론은 미투 보도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함.
2.독자들에게 최대한 상세한 과정을 설명해야
Since this type of reporting can be difficult, Bennett says that journalists and editors should talk more openly to readers about the process of covering these #MeToo moments. “Because it doesn’t seem to be a consistent process,” she says
(미투 보도는 기자들에게 매우 어렵다. 그래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미투의 순간을 상세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성폭력을 증명해내는 과정은) 일관된 흐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허재현 의견.
최근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는 "언론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기사를 썼다. (https://news.v.daum.net/v/20200801101225166 / 박재동 성추행 사건 판결문은 어땠나)
그러나 피해를 증명해내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심지어 일관된 진술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언론은 피해자를 관찰해야 한다. 이것은 기자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더불어, 독자에게는 기자가 관찰한 과정을 가급적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3.심리 상태나 동료와의 대화 기록 등을 살피는 것도 방법
“I am rethinking different ways to corroborate that this happened — through mental health history, depression, any records you have of seeing a therapist,” she says. “Or if there are any colleagues you worked with who can account for any erratic behavior, if you seemed off or you quit suddenly.”
(피해호소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정신 건강 기록, 우울증, 치료사의 기록 등을 검토할 수 도 있다. 또는 피해호소인의 동료에게 혹시 좀 이상한 행동 목격한적 없었는지도 물을 수 있다.)
>>허재현 의견.
피해호소인의 주변인들 상대로까지 취재하는 것은 2차 가해가 아니다. 박재동 화백 미투 호소인이 친구와 나눈 카톡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미투 입증을 위한 전형적인 취재 과정으로 볼 수 있다.
4.기자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So how do you prioritize? How do you think about which ones are worthy? And we are human, we are fallible — should we even be making that decision?”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까? 무엇이 더 가치있을까? 우리는 사람이고 실수를 한다.)
>>허재현 의견.
미투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기자는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실수했다고 하여 징계하는 것은 되레 자유로운 미투 보도를 위축시킬 수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5.저널리즘적으로, 미투 보도는 입증돼야 하는 것.
Beck is looking for new avenues for verification because, in a way, without corroboration, reporters may be telling victims, “Journalistically, your rape did not happen. That's a horrific thing,” she says.
(미투 입증을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기자는 피해호소인에게 "저널리즘적으로, 당신이 강간당한 사건은 없는 것이나 같다"고 말해야 한다.)
>>허재현 의견.
저널리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미투는 없는 사건이나 마찬가지로 다뤄져야 한다. 이점이 여성주의와 저널리즘의 차이다. 또한 제시카 베넷은 기자의 취재 과정을 설명하며, hear(듣다) 대신 corroborate(입증하다) 라는 단어를 쓰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것은 언론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려 노력하되, 피해는 입증돼야만 보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의 책무는, 듣는 것에서 나아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6.미투 보도원칙과 성범죄 보도준칙은 다르다
How Journalists Corroborate Sexual Harassment and Assault Claims
(기자는 어떻게 미투 주장을 입증할 것인가)
>>허재현 의견.
제시카 베넷은 crime(범죄) 이라는 단어 대신 Claims(주장) 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미투는 '형사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 성범죄는 '형사적 판단이 완료된 사안'으로서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성범죄보도준칙으로 미투사건 보도 기자를 판단하거나 징계해서는 안된다. 성범죄 보도준칙은 2012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성범죄보도준칙 권고안을 마련한 것을 계기로 확산했다. 나주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미투 사건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2017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 이후 미투를 본격적으로 마주했을 뿐이다. 따라서 언론은 2012년 마련된 성범죄보도준칙으로 미투 보도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미투는 성폭행 사건과 다르기에, 미투보도준칙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와 논의가 따로 시작돼야 한다.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가 편집국과 상의 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내서 문제라고? 그렇다면 그건 경향신문 기사 출고 시스템을 손봐야할 문제이지 기자를 무턱대고 징계할 일이 아니다.
■ <뉴욕타임즈> 젠더 에디터 '제시카 베넷' 인터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