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7년만에 간첩조작 국정원 수사관들을 만나 말을 걸었다 "유가려 때린 사실 인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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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187회 작성일 20-05-21 13:05본문
[사진설명] 19일 재판을 마친 국정원 직원들이 법정 밖을 나서고 있다. 맨 왼쪽 남성과 오른 쪽 여성이 유가려씨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인 의혹을 받는 국정원 직원들이다.
“저를 전기고문실로 데리고 가려 했어요”
2013년 12월 저는 유가려씨를 중국에서 만나 인터뷰 했습니다. 유가려씨는 유우성(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피해자)씨의 동생입니다.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한 뒤 중국으로 추방당했었습니다. 저는 유씨가 대체 무슨 연유로 허위자백까지 한 것인지 궁금해 그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당시 들었던 유씨의 주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대머리 수사관과 아줌마 수사관(이름 모름)이 저를 주로 조사했어요. 번갈아가면서 저를 때렸어요. 아줌마가 저를 너무 때려서 손이 빨갛게 되면 대머리 수사관으로 바꾸어서 때렸어요." , "조사실 들어가면 책상 두개가 있어요. 하나는 제가 앉고 다른 하나는 대머리 수사관과 아줌마 수사관이 앉아요. 조사하다가 제가 '간첩 아니다'고 말하면 다가와서 일으켜 세워요. 주먹으로 때리거나 뺨을 때려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기도 해요. 아줌마 수사관은 뺨을 때리거나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요.", "어느 날은 저를 전기고문실로 끌고 가려 했어요. 아줌마 수사관과 대머리 수사관이 전기 고문실이라고 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안 가겠다고 버텼어요."
이 증언은 당시 <한겨레> 기사를 통해 상세하게 보도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전기고문실의 공포, 아직도 치가 떨려 https://news.v.daum.net/v/20131221183007091)
유가려씨의 증언은 지금까지 제대로 검증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유가려씨의 오빠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려던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 사건은 진실이 밝혀졌으나, 유씨가 당한 폭행 및 강압수사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일부 보수세력은 여전히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을 두고, '비록 증거는 조작되었으나 동생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기에 유우성은 간첩이 맞다'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유가려씨가 왜 허위자백을 하게 됐는지 그 진실이 밝혀질 차례입니다.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2단독 송승훈 판사 주재로 열린 국정원 직원 유아무개(52·남), 박아무개(48·여)씨에 대한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 첫 공판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유씨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강압 수사를 벌인 점을 인정해 이들 수사관들을 최근 기소했고 관련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유우성씨 외에 동생 유가려씨에 대해서도 국정원 직원들이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것이 인정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유가려 가혹 수사 의혹 국정원 직원들 끝내 법의 심판대에
유가려씨가 7년전 이름도 모른 채 맞닥뜨려야 했던 대머리 수사관(박아무개), 아줌마 수사관(유아무개)은 이날 재판에 변호인과 함께 출석했습니다. 박씨는 실제로 이마 윗부분까지 머리가 벗겨져 있었고, 유씨는 가운데 가르마를 내어 머리칼을 양옆으로 내린 중년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유가려씨가 애초 증언한 것과 같은 생김새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외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떠올리며 오랫동안 그들의 외모를 상상했던 저로서는 복잡한 심경이 밀려왔습니다.
이날 재판의 방청석에 유가려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우성씨는 와있었습니다. 유씨는 이들 수사관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고, 피고인석의 수사관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유씨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재판 중간 피고인석의 박씨가 변호사에게 "유우성 못나오게 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우연히 들렸습니다. 그러자 박씨의 변호사가 판사에게 "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게 해주십시오. 유우성씨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검사가 "국정원 수사관들이 과거 유우성씨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유우성씨는 그래서 사건 당사자이기도 합니다"라며 반박했습니다. 결국, 재판은 비공개 진행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송승훈 판사는 다만 유우성씨의 방청은 이후로도 허락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재판은 일부 조정만 진행되고 20여분만에 끝났습니다. 국정원 쪽은 다른 국정원 직원들과 몇몇 북한이탈주민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입니다. 북한이탈주민센터에서 폭행 수사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내세우는 증인으로 추정됩니다. 다음 재판은 6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립니다.
재판정을 나서는 국정원 직원들을 따라가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라고 합니다. 유가려씨 때린 사실 인정하십니까."
"......"
"저는 이 사건을 7년간 추적하고 있는 기자입니다. 유가려씨가 물병 같은 것으로 머리통을 세게 맞았다는데요."
"(유 수사관이 고개를 돌려 기자를 잠시 바라봄)......"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그러자 국정원 쪽 변호사가 기자를 제지했습니다.
"계속 따라오실 겁니까."
"답변을 하실 의향이 없으시면 더이상 쫓아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7년을 기다려온 국정원 수사관들과의 부닥침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더이상 그들을 쫓지 않고 법원 밖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지금까지 간첩조작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건이 무죄로 밝혀지면 국가가 대신 사과하고 끝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합니까. 국가의 사과는 당연하지만, 엄연히 가해자들도 처벌을 받고 또한 불이익을 받아야 그게 '정의의 완성' 아닐까요. 공금 횡령 등의 범죄로 해임 또는 파면 되는 공무원은 퇴직급여를 일부 감액받습니다. 혹여라도 간첩을 잡은 대가로, 서훈을 받았다면 그것도 취소되어야 마땅하지요. 이러한 수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수사관들이 성과주의에 매몰돼 무리하게 사건을 조작하거나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리포액트>는 이들 국정원 수사관들의 향후 재판을 지켜보고 그 결과를 기록하려 합니다.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는 벗겨졌지만 이 사건의 조작에 가담한 책임자들에게 모두 적절한 처분이 내려져야만 정의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유가려씨는 아직도 그때 받은 강압수사의 상처가 커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재판에도 방청을 오지 못한 이유입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고 다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트라우마 탓에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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