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기자 비위 고발센터 "외국에는 출입기자가 아니라 취재분야만 있을 뿐"... 검찰출입기자단 당장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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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6,277회 작성일 19-12-23 17:53본문
(왼쪽부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기자, 엄경철 KBS보도국장,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박영흠 협성대 초빙교수,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이정훈 신한대 교수 (사진=미디어스)
'출입처 기자단'의 폐쇄적 특혜를 취재하다보면, 최소한 1970년대부터 이러한 구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원로 기자들이 그때부터도 '악질적 취재 카르텔 관행'이 존재했다고 증언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득권을 쥔 기자단은 그 특권을 내려놓지 않았고 이 카르텔은 2019년에도 존재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이런 취재 관행을 용인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난 5일 MBC <피디수첩> '검찰 기자단' 편의 방송 이후 다시 이 문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취재 관행 개혁을 위한 방안 모색'이란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가 참여해 발제를 맡았고, 엄경철 KBS 보도국장,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등이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박영흠 교수가 발표한 내용중 눈에 띄는 게 있어 <리포액트>에 요약해 싣습니다.
해외에서는 '출입 기자'가 아니라 '취재 분야'가 있을 뿐
박영흠 교수의 발표문을 보면, 미국에는 백악관 등 몇몇 예외적인 곳을 제외하면 한국식의 출입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담당 취재 분야의 기자'(general assignment reporter)가 있다는 겁니다. 기자들은 특정 기관이나 따로 마련된 기자실에 상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구권에서는 '검찰 담당 기자', '환경 담당 기자'가 있는 것이지 '검찰 출입 기자', '환경부 출입 기자'가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박 교수는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과 유사한 출입처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일제 시대 일본의 기자클럽 제도를 반영하여 기자단이 결성되었고, 청와대에 출입기자실이 처음 마련된 박정희 정권 이후 언론이 정권에 협조하고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출입처와 기자실 제도를 악용해왔던" 역사가 있었다고 박 교수는 설명합니다.
물론, 한국의 출입처 기자단 제도에 아주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박 교수는 출입처 시스템을 바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서구에 견줘 공적 영역의 응답 책임성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출입처를 없앨 경우, 한국 관료 사회에 대한 취재 장벽이 세워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출입처 기자단 제도는 기자들을 강력한 집단으로 만들어 개별 기자들이 할 수 없는 일, 가령 정부 관료들로 하여금 기자들을 만나 질문에 응답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기자단 해체로 기자들이 파편화되었을 때의 상황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데 "과거 외교부의 경우 개방형 기자실과 공개 브리핑 방식으로 전환한 이후 심층 브리핑이 크게 줄어들고 기자들이 정보 부족에 시달린 사례가 있다"며 정부 취재원의 언론 대응 방식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출입처 제도를 바로 없애면 안된다고 박 교수는 우려했습니다. 박 교수는 "출입처 폐지는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출입처를 없앨 경우 부작용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는 대로 불필요한 출입처부터 하니씩 빠른 시일 내로 폐지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리합니다. 그 이유로, 첫째, 업무 영역 간에 칸막이가 생기면서 자신의 출입처 바깥에서 벌어진 일은 다루지 않으려는 관료주의적 병폐가 발생하고 둘째, 기자가 취재원과 유착하거나 출입처의 논리에 동화되어 출입처에 우호적인 기사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면서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보도를 ‘찍어내는’ 패거리(pack) 저널리즘이 양산됩니다. 넷째, 출입처 기자단 제도는 등록되지 않은 언론사들에게는 보도자료 등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배타적 카르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경남도청 출입제도 폐지의 경험
박 교수의 주장은, 사실상 출입처 폐지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출입처 시스템 개혁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국적 관료 사회의 특성상 출입처가 폐지되었을 때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서구권처럼 무작정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공기관을 상대로 기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 대부분은 공개되지 않는 형편입니다. 공공기관 주요 간부의 개인 연락처도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최근 "출입처 폐지" 개혁을 선언한 KBS 엄경철 보도국장도 이날 토론회에서 "국장 임명을 받기 전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한 출입처 폐지를 이야기 했는데 '출입처 폐지'라는 단어만 남았다"라며 "사실 '출입처 혁파'를 쓸까. '폐지'를 쓸까 하다가 폐지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현실적으로 출입처에서 자유로운 기자들을 만들어보고자 함이었고 출입처 중심이 아닌 사고를 갖자는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는 편집장을 역임할 때 출입처 제도 폐지를 운용했던 경험을 공유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이사는 "경남도민일보는 2001년부터 경남도청이 출입 기자단을 폐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이사는 "2001년도에 공무원 노조가 결성되면서 언론개혁 국민행동운동본부가 한 일 중 하나가 기자실 폐쇄였다. 폐쇄형 기자실을 개방해 1인 미디어도, 시민도 출입할 수 있게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이사는 “출입처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출입처에 따라 기자들에게 업무를 분담시키는 것인데 어느 순간 가장 큰 출입처인 경남도청 출입 기자가 자신의 권리구역이라고 생각해 2010년 편집국장을 맡은 뒤 출입처를 배타적인 구역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주의를 주며 개선해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김 이사는 "출입 기자단이 배타적 취재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 21조1항(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의 위반이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찰 기자실 없애도 검찰 취재 할 수 있다
여러분은 공공기관에 대한 접근권과 취재를 특정 언론사 소속의 기자들에게만 허락하는 현행 '기자단 출입 제도'를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허재현 기자는 다른 무엇보다 검찰 기자단의 해체와 검찰 기자실 폐쇄부터 실험해보면 어떤가 제안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토론회에서 제기된 대로, 모든 출입처 시스템을 다른 안전장치 없이 한꺼번에 없애면 부작용 또한 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현행 출입처 시스템 덕에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 업무를 살펴보고 감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경찰청장은 2주에 한번씩 출입 기자들을 만나 수사 및 경찰 행정 상황 등에 대한 질의 응답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기자들은 국민을 대표해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경찰은 수사 외에도 국민 편의를 위한 각종 경찰행정업무 또한 진행되고 있기에, 기자들이 국민을 위해 상주하며 일할 필요 또한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 출입 기자단 운용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순기능에 견줘 역기능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감시하기보다는 검찰이 선택적으로 흘려주는 정보에 의존해 검찰의 손과발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오. 기자들은 조사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수사 서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검 등의 복도를 돌아다니며 기자가 검찰 수사를 감시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기자들이 지검 등에서 상주하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차장 검사 등이 정기적으로 마련해주는 '기자 티타임'에서 수사 관련 질문을 하는 것 뿐입니다. 검찰 출입 기자단은 검찰 감시라는 목적보다는, 수사 정보 빼돌리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 외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을 위해 국민 세금을 들여 업무 공간을 검찰청 안에 독점 제공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그외 검찰 행정 전반에 대한 업무 파악은 기자들이 지검 등이 아닌 법무부를 통해 하면 됩니다.
어떤 기자들은 '국정 농단 사건'을 예로 들며 기자들이 검찰에 상주한 덕에 진실이 묻히지 않고 권력자들에 대한 감시가 가능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국정농단 사건은 2016년 가을께 한겨레 법조팀이 아닌 한겨레 특별 취재팀이 발굴해 최초 보도를 내었던 사건입니다. 이어, JTBC의 태블릿 피시 최초 보도도 법조 기자가 해낸 게 아닙니다. 국정 농단 사건은 검찰이 밝혀낸 사안이 아니라, 법조팀 소속이 아닌 기자들이 외곽 취재를 통해 폭로하고 이어 수사 여론이 급격히 커지면서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고 결국 특검이 꾸려졌던 사안입니다. 검찰이 국정농단 수사에 나서기까지 검찰 기자단은 특별한 보도를 한 게 없습니다. 검찰출입기자단이 없으면, 우리 사회 권력층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진다는 것은 기우입니다.
추미애 법무 장관 지명자가 최종 법무장관이 되면, 검찰 기자단 운용 제도를 개선하고 현행 기자실을 '국민 브리핑'실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학계·언론계 등을 망라해 소위 '법무검찰 취재지원 시스템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6개월 정도의 숙의 기간을 갖고 제도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검찰 출입 기자단을 없앤다는 것은, 언론의 검찰 취재를 없애라는 게 아니라 검찰 출입 기자단에게만 제공되어온 특혜를 없애고 더많은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요구입니다.
☞'검찰 기자실의 폐쇄 또는 운용 방식 전면 개선을 청원합니다' 청와대 청원하러 가기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583942
ㅁ참조
출입 기자단의 역사/ 박정희 정부 때 기자 관리 목적으로 틀을 갖춰 (출처.위키백과)
1920년대부터 조선인과 일본인 기자들은 일본의 기자 클럽의 영향을 받아 출입처에 기자단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체신국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체신국의 관리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광화구락부, 이왕직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만든 이화구락부 등이 결성되었다.[1]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의 기관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조직하였다.[2]
1950년대까지 언론 환경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2]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언론 환경은 급변하게 되었다. 4·19 혁명 이후 언론사가 난립하여 사이비 기자가 생기고 출입 기자단의 부패가 알려져 언론 매체와 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였다. 군부는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언론 매체를 부패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통제하려 하였다.[3] 박정희 정부는 자의적으로 청와대에 출입하는 기자의 수를 조정하여 쉽게 언론 매체와 보도를 통제하기 위하여 1963년 청와대에 기자실을 설치하고, 출입 여부를 청와대가 승인하는 소위 아그레망 제도를 도입하였다. 당시 기자실 이외에 보도 자료를 얻을 방법이 없던 기자들은 정부의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부터 정부 기관 대변인의 발표를 기자단이 취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이 관행은 1967년 정부가 각 부처에 공보관을 공식적으로 두어 제도로서 정착하였다.[1]
1972년에 박정희 정부는 전국의 기자에게 고유한 번호를 기재한 프레스 카드를 발급하였고,[4] 카드 발급을 제한하여 기자의 감원을 유도하였다.[5] 당시 주간지나 월간지 기자에게는 프레스 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기자실이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기자실의 배타적, 폐쇄적 이용이 자리 잡게 되었다.[1] 한편 프레스 카드를 도입한 후, 박정희 정부는 행정 부처에 설치된 기자실 47개을 18개로 여기에 출입하는 기자 790명을 465명으로 감축하였다.[5]
기자실 제도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 정책으로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정부는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 매체를 줄이고, 보도 지침을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보 통제 체계를 구축하였다. 반면 남은 언론 매체에게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언론 매체의 경쟁이 사라지고 기자실과 기자단은 뉴스 보도를 위한 취재 시스템에서 특혜를 공유하는 배타적 조직으로 변질되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