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사법 개혁 끝까지 감시한다 [팩트체크] '공소장 공개 원칙' 에 대해 한동훈과 검사들이 감추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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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5,899회 작성일 21-12-14 11:18본문
재판전에 공소장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두고 검찰과 법무부 사이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공소장 유출'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었고 지난 8일 박범계 법무장관은 “첫 재판이 열리기 전 공소장을 공개하면 안되는 건 원칙의 문제”라고 맞섰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은 “틀린 말 해놓고 비판받으니 '말의 자격'을 따지려 드는 것이 유감스럽다”며 박 장관을 저격했습니다.
'재판 전 공소장 공개'는 그간 우리 나라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관행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을 딱히 불법으로 규정해놓은 법률조항은 없지만, 공소장 공개의 주체가 검찰이다보니 아무래도 검찰에 유리한 수사 내용만 선택적으로 공개되어 검찰이 여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해 2월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은 “미국에서는 재판 시작 후 공소장을 공개한다”며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취지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자 일부 언론(SBS)에서는 “미국에서도 재판 전에 공소장을 공개한다”며 '추 장관이 틀린 주장을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요.
<리포액트>는 '미 연방 형사소송 법률'(Federal Rules of Criminal Procedure')을 직접 살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연방법원에서 정식 재판 전에 피의자의 공소장이 공개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도 아예 인터넷에 전문을 띄워 우리나라보다 더 과감하게 공개합니다.
실제 예를 살펴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로저 스톤과 폴 매너 포트는 2017년부터 미국 연방 법원에서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습니다. 이들의 공소장 공개 시점을 찾아보았습니다. 로저 스톤은 2019년 1월24일 기소가 결정됐고 공소장은 다음날인 2019년 1월25일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2019년 1월28일 워싱턴디시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면 추 전 장관이 틀리고 검찰의 주장이 맞다는 것일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공소장 공개를 결정하는 주체가 연방 대배심원단(Grand Jury)입니다. 이들은 대배회심(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을 열어 검찰과 경찰의 수사 내용을 본 뒤 피의자를 기소할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 대배회심, 즉 법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공소장 공개를 결정하는 주체는 법원이 되고 그것을 수행하는 실무역할을 검찰이 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 추 전 장관은 이런 복잡한 내용을 짧게 설명하다보니 "미국에서는 재판 시작 후 공소장을 공개한다"고 말한 듯 합니다.
만약,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대배회심 재판'이라는 절차를 생략한 채 우리 검찰처럼 "미국에서도 재판 전에 공소장을 공개한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면 여론을 호도하는 셈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검찰이 법원의 허락없이 함부로 공소장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미 연방 형사소송법률'을 보면, 대배심원단이 기소에 동의하지 않은 사건의 공소장은 ‘판사가 비밀유지 명령을 하고 재판연구원(clerk)은 공소장을 봉인해 누구에게도 공소장의 존재조차 알려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리포액트>가 취재하면서 받은 인상은, 공소장 공개와 관련해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법률학자들도 그렇고, 검찰도 그렇고 이 부분과 관련해서 따로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 연방 형사소송 법률'을 직접 번역해 연구했고 미국 변호사를 통해 검증을 거쳐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공소장 공개 관련 정확한 연구 없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하고 싶은 말만 해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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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공소장을 재판전에 공개"한다고?...미국에서 웃음거리가 된 SBS 법조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