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저널리즘 연구 해외 언론들도 '정치인 성추문 보도' 때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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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912회 작성일 20-07-17 19:51본문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된 여비서 성희롱 의혹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지 각계에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철학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언론은 어떻게 보도하는 게 좋을까요. 언론은 의혹제기 당사자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당연한데, 유독 '성폭력 고발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언론의 태도가 혼란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한국방송(KBS)은 '한국방송 성평등센터'의 자문을 받아 의혹제기자를 '피해자'로 부르겠다고 이미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저널리즘적으로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리포액트>는 해외 언론이 이번 박원순 시장 관련 미투 사건과 해외 유력 인사들의 성추문을 그간 어떤 용어를 사용해 보도해왔는지 살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해외 언론들은 대부분 처음 의혹제기가 나왔을 때는 '고소인' 또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의혹이 명료해졌을 때부터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박원순 시장 비서 보도 때 해외 언론은 '고소인'이라고 표현
먼저, 박원순 시장 관련 사건 해외 보도를 살핍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지난 13일 박원순 시장 타계 소식을 전하며, 성추문 의혹도 전했습니다. 'Seoul Mayor Park Won-soon accused of four years of sexual'(4년간의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서울시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BBC가 사용한 용어는 '피해 호소인'(alleged victim)입니다. BBC 보도의 중간제목은 'What did the alleged victim say?'(피해 호소인은 뭐라 말했나?)였습니다. 'victim'(피해자) 앞에 'alleged'(의혹을 제기한) 수식어를 넣음으로써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alleged'는 주로 확정적이지 않은 혐의 등을 설명하는 법조보도에서 해외언론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미국의 ABC 방송도 같은 날 'alleged victim'이란 단어로써 보도를 했습니다.
미국의 보수지 <워싱턴포스트> 는 같은 날 'Seoul mayor who killed himself accused of sexual harassment by former secretary'(서울시장이 비서 성추문 사건으로 고소되자 자살하다)란 제목의 보도에서 'alleged sexual harassment'(제기된 성추문 의혹) 라고 신중하게 표현했습니다. 의혹 제기자에 대해서는 기자가 직접 victim 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accuser(고소인) 또는 secretary(비서)라고 적었습니다. 다만, 김재련 변호사가 '피해자'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만 그대로 전했습니다.
해당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Kim said the chat records stored on the victim’s phone were submitted to the police as evidence"(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의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던 기록을 경찰에 증거로 냈다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역시 '피해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즈>는 '‘I Felt Defenseless’: Seoul Mayor’s Secretary Speaks Out About Alleged Abuse'("무력감을 느꼈습니다":서울 시장의 비서가 성폭력 의혹을 제기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기사는 비교적 충실하게 고소인의 주장을 전했지만 '피해자'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alleged abuse'(제기된 성폭력)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 것에서 보듯이, 성추문을 확정된 사실처럼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뉴요커>지가 와인스타인 성추행 피해자를 인터뷰한 기사의 메인 인터넷 페이지 갈무리
미투사건 촉발한 와인스타인 사건 때도 '피해자' 용어 사용 안해
해외 언론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정치인 성추문 사건만 이렇게 보도하는 게 아닙니다. 자국에서 벌어진 사건 등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거리두기 용어'를 사용합니다. '미투 사건'을 촉발한 2017년 '할리우드 제작자 와인스타인' 사건에서도 언론은 초기에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고소인' 또는 '고소인 이름'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적 분쟁이 끝난 현재에는 언론들이 이 사건 관련해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와인스타인 성추문 관련 최초보도를 한 <뉴욕타임즈>는 2017년 10월8일 "Harvey Weinstein Is Fired After Sexual Harassment Reports"(하비 와인스타인이 성추문 관련 조사이후 해고됐다)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다만, 이 기사 어디에서도 '피해자'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와인스타인 관련 '성추문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설명만 할 뿐입니다.
<뉴욕타임즈> 첫 보도 이틀 뒤인 2017년 10월10일 <뉴요커>지는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배우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From Aggressive Overtures to Sexual Assault: Harvey Weinstein’s Accusers Tell Their Stories-와인스타인을 고소한 사람이 자세한 성폭력 내용을 털어놓다)에서도 기본적으로 고소인(accuser)또는 그녀(sh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기사 속에서 '피해자'라는 단어는 뭉뚱그려진 의미로 사용되거나 인터뷰에 응한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가 직접 피해자라고 언급했을 때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Some employees said that they were enlisted in a subterfuge to make the victims feel safe. (어떤 직원들은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집단으로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
“The thing with being a victim is I felt responsible,” she said. “Because, if I were a strong woman, I would have kicked him in the balls and run away. But I didn’t. And so I felt responsible.” She described the incident as a “horrible trauma.” (“피해자가 된 것자체만으로 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르젠토가 말했다. “제가 강한 여자였다면, 그자의 성기를 걷어차고 달아났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임감을 느꼈죠.” 그녀는 이 사건을 ‘끔찍한 외상’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현재 언론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victim)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고 피해자와 와인스타인과의 법적 분쟁이 끝나가는 상태 때문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지난달 30일 보도의 제목은 'Harvey Weinstein’s Victims Entitled to Compensation From $19 Million Fund'(하비 와인스타인의 피해자들은 1900만 달러 기금에서 소송비용 등에 쓰인 금액의 보상을 받게 될 것 같다)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 각종 성추문 의혹 때도 '고소인' 용어 사용돼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관련 각종 '성추문 보도'에서도 언론은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의 진보언론 <가디언>지는 2016년 'Jessica Drake:Porn star is 11th woman to allege Trump sexual misconduct(포르노 스타 제시카 드레이크:부적절한 성추행 의혹으로 트럼프를 고발한 열한번 째 여성) 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배우 '제시카 드레이크'가 트럼프로부터 과거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자세히 전했지만 '고소인'(accuser)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추행 뒤 살해당한 여군 '바네사 길렌' 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그러나 미국 언론은 아직 피해자(victim)이란 용어 사용에 신중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11일 'Vanesa Guillen may have faced harrassment before her disapperance and death, Army says(바네사 길렌은 성추행 당한뒤 사라진 것 같다고 군당국이 밝혔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보면, 기사 어디에도 '피해자'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네사 길렌'이라고만 건조하게 표현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당사자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기에 언론이 A씨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 같습니다.
주목할만한 건, 조사를 마친 미 육군조차 단정적으로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 육군 조사관은 'could have faced some harrasment'(성추행 피해에 직면했던 것 같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추행을 하고 자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에 대해서도 기자는 가해자(perpetrator)라는 단어 대신 용의자(suspect)라는 법적 용어를 썼습니다.
<리포액트>의 취재는 여기까지입니다. 허재현 기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도들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반론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의견을 주십시오. 다만, 우리 언론이 '젠더 이슈'에 과하게 몰입하여, 저널리즘의 원칙 앞에 무조건 '젠더'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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