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내란음모조작사건 [손가락 칼럼] 민주진보진영 190석 몰표는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도 검토하라는 국민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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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316회 작성일 20-05-14 11:51본문
[사진설명] 13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 광장에 모여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면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이경진씨와 시민들.
"코로나 탓에 요즘 격리라는 단어들을 많이 씁니다. 저는 그 단어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힙니다. 7년째 감옥에 격리되어 있는 억울한 동생이 떠올라서입니다. 그래서 제가 청와대 앞에서 천일동안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누나도 포기했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 누나도 힘드니까 접었다며 동생이 슬퍼할까봐,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랜 노숙 생활로 몸 이곳 저곳에 고단함이 배인 노인은 사람들 앞에서 힘겹게 말을 마친 뒤 결국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절대 쓰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콱 준 탓에 되레 쥐가 난 듯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 들어 그의 다리를 주물렀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다리를 주무르는 사람들에게 "꼭 밥먹고 가시요"라며 울먹였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생을 위해 나선 누나의 이름은 이경진, 동생의 이름은 이석기입니다.
이석기. 여기서부터 뭔가 숨이 턱하고 막힙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감옥에 간 정치인. 벌써 8년째 수감중입니다. 이제는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게 좀 가벼워질 법도 한데 잘 안됩니다. 국민에게 이 이름을 설명하는 것조차 주저됩니다. 이석기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아니 거꾸로 우리 사회가 이석기라는 이름을 짓누르고 있는 무게의 수치가 이렇게나 큽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13일 열린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씨의 ‘청와대 앞 농성 1천일 기자회견’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언론이 무관심할 것이고, 혹은 관심이 있더라도 눈치를 볼것같아 마음에 걸렸습니다.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이른 아침 집을 나서게 했습니다. 며칠전 친구와 나눈 대화도 제 마음 속 한 구석에 채근을 하는 듯 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대체로는 정의당을 지지합니다. 오랫동안 정의당만 찍어온 제 친구는 이번 총선 때 민중당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이석기 의원 그렇게 구속될 때 어떤 방어도 해주지 못한 것에 부채감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해줄 거는 이 의원의 석방을 주장하는 민중당에 한 표 주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민중당은 약 30만표(득표율 1.05%) 밖에 얻지 못해 국회 원내 1석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제 국가보안법 폐기를 전면에 내걸고 의정활동을 펴는 정당은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이나 정의당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더이상 적극적인 듯 보이지 않습니다. 이 악법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현실적으로 많이 떠난 상태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인 이경진씨의 천일 노숙 농성을, 언론인으로서 기록해놓지 않는다면 저역시 마음속 부채감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날 기자회견을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사진설명] 동생인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주장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이경진씨.
이경진씨가 보낸 '노숙 천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농성장에 물이 샜을 것이고 여름이면 찜통이 되었을 것이고 겨울이면 삭풍이 불어닥쳤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노인은 청와대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제발 동생을 꺼내달라" 외롭게 호소했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어떤 악법인지 알법도 한데 왜 문 대통령마저 침묵하고 마는지 의아했을 것입니다. 오랜 노숙으로 몸이 상하는 것보다 마음이 먼저 상했을 것입니다.
'이석기'라는 이름을 들으면 여러분 어떤 생각부터 드십니까. '내란 음모'란 단어부터 떠오르시죠. 국가를 전복하려다 실패한 철부지같은 돈키호테 혁명가를 떠올리시나요. '종북'이란 단어를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이 최종적으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 무죄 판결 받은 것을 아시는지요. 주변인들을 모아놓고 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을 한 것까지만 인정돼 2015년 징역 9년형을 받았습니다. 내란 선동이란 말이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광훈 목사도 같은 혐의로 고발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이 전 의원의 유죄를 확정지은 판사들이 모두 지금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아시는지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그렇고 이민걸 전 판사(2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전 의원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변호인단이 2019년 6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인 것은 아시는지요. 아니, 이 전 의원이 아직도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계셨는지요. 이렇게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쳐놓은 심리의 장벽에 갇혀 어쩌면 이석기 전 의원과 관련해 벌어진 일들에 애써 눈감고 지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석기 전 의원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그만큼 이 사건 취재가 안되어 있는 탓입니다. ‘국정원 프락치’의 제보로 이 전 의원 등에 대한 국정원 수사가 시작됐고, 그자가 뭔가 과장된 증언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워낙 꽁꽁 숨어 있는 탓에 진실을 파헤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언론도 정작 이 사건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는 이 전 의원 등이 붙잡혀갈 때만큼 관심있게 취재하지는 않아, 재판에서 어떤 공방이 이뤄졌는지 남겨진 기록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질문은 드려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말 당시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이 맞는가.’ ‘그저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바라본 것은 혹시 없는가’, ‘본인들은 절대 종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왜 우리는 그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무죄를 주장하는 조국의 편에 쉽게 서면서, 이석기의 편에는 쉽게 서지 못하는 것일까.’,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에 우리가 이렇게까지 무관심하게 지내도 되는 것인가.’, ‘우리가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책을 읽으며 프랑스 지성인들의 양심을 찬양하면서, 위선자처럼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은 헌법79조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법부 판단을 뒤집으라고 있는 권한이 아닙니다.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하되, 다만 우리 사회 각 집단의 화합과 공존, 또는 상처입은 국민의 치유를 위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2020년 야권 인사중에 신지호(공직선거법 위반), 공성진(정치자금법 위반) 전 의원도 사면을 받았습니다. 아마 여야 정치권의 화해를 위해 대통령이 결단한 것일 겁니다.
그러나 유독 야권 정치인인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서만큼은 사면 검토 움직임이 없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전 의원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온 길이 늘 사회적 약자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과 함께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전 의원에 대한 사면 검토는 문 대통령의 소신보다는 보수세력에 대한 여러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이 민주진보진영이 배출한 대통령이자 우리 나라 전체의 화합을 고민해야 하는 대통령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범민주진보진영에 190석의 몰표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국정 안정이 최선이니 이제 좀 야당 눈치좀 보지 말고 원래 소신대로 나라좀 운영해보라는 국민의 주문 아닐까요. 검찰과 경찰 개혁 완수하고 박근혜 정부 때부터 쌓여온 적폐들을 제대로 청산하라는 것이겠지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과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마녀사냥도 박 전 대통령이 저질렀던 불행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이제 이 문제도 소신껏 좀 바로잡으면 어떨까요.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문 대통령이 소신껏 이 전 의원에 대한 사면을 검토할 수 있는 적기는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전 의원은 선고된 형의 80% 가량을 채웠습니다. 2013년 말부터 구속되었으니 빨라도 2022년 말에 출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을 다 치르고 출소하는 것과 대통령 사면을 통해 출소하는 것은 그 사회적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신념을 탄압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인권국가로서 세계의 존경을 이어가려면 대통령 사면을 통해 출소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 이뤄졌던 국가폭력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진보언론도 더이상 이 문제에 눈감지 않고 문 대통령에게 이 전 의원의 사면을 권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까지 진보진영이 이 문제에 불편한 침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려던 노회찬 당시 정의당 의원을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노 의원은 "우리가 종북 몰이에 침묵하면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며 설득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기자회견 자리를 떠나기 전 이경진씨의 허름한 청와대 앞 농성장을 살폈습니다. 이제 다시 찾아올 오뉴월 더위를 대비하기 위해 우산 하나와 낡은 휠체어가 위태롭게 농성장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농성을 계획하던 즈음 이경진씨의 여동생이 죽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얼마나 더 고된 세월을 마른 침을 삼키며 거리에서 보내야 할까요. 이 가족이 겪는 고통은, 불의를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부디 이 칼럼이 이경진씨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줄 마중물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이경진씨를 찾아,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진설명] 이경진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민들의 부축을 받아 걷고 있다.
[사진설명] 이경진씨가 마련해 놓은 1인 농성장.
[덧붙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코로나19는 역시 힘없는 사람들을 먼저 덮치고 있습니다. 일자리 잃은 청년들, 과로사한 노동자 소식에 저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와중에 '격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숨이 턱 막힙니다. 사회로부터 사람으로부터 7년째 강제 격리되어 있는 억울한 동생이 떠올라서 입니다.
2017년 7월. 촛불정부 출범에 박수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뒤에는 감옥문이 꼭 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대통령의 결단에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참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싶습니다.
그날로 아직 청와대 앞을 못 떠나고 있습니다. 누나도 포기했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 누나도 힘드니까 접었다며 동생이 슬플까봐 못 떠나고 있습니다. ‘석기야,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 명이 붙어있는 한 누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제가 할 수 있는건 이것뿐이었습니다.
새벽 6시면 세종로 성당에 내려가서 미사를 드립니다. 가난한 이, 굶주린 이, 옥에 갇힌 이를 먼저 포용하라는 복음을 손 모아 기도합니다. 포용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오늘만은 대통령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터벅터벅 청와대 앞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벌써 천일이 지났습니다.
이석기 의원은 용기있는 진보정치인입니다. 종편 특혜 모조리 환수하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부당하다, 4자회담 종전선언이 해법이다. 동생은 바른 말을 하다가 내란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주장이 대통령의 손으로 현실이 되는 걸 지난 3년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아직도 안 나왔냐'고 이야기합니다. 제일 많이 듣는 말인데, 제일 가슴 아픈 말입니다. 말 몇 마디를 이유로 독방에서 8년째 가두어 놓은 것은 잔인한 국가폭력입니다. 지난 정권이 쳐놓은 배제와 차별의 그물, 반공독재정권이 만든 색깔론의 올가미. 이제는 대통령의 손으로 걷을 때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국민들의 믿음에 얼마나 어깨가 무겁습니까. 동생을 풀어주는 것 또한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비통한 자를 품어 안는 정치를 더 올곧게 펼쳐주십시오. 이 말씀을 만나서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오도가도 못하고 망부석이 되어가는 저를 한번이라도 꼭 만나주십시오.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 오뉴월에 찜통으로 변한 비닐 천막. 어떻게 견뎌왔나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것입니다. 민가협 언니들과 각계 선생님들, 청년들과 시민들 고맙습니다. 여름에 생수 건네 준 연인들, 겨울에 담요 가져다 준 시민들 그 이름 없는 분들께 이 자리 빌어 감사드립니다.
2020년 5월 13일
청와대 농성 1천일에 즈음하여
이경진(이석기 의원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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