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터뷰인터뷰 [논터뷰] “진보언론 젊은기자들이 더이상 수구(척결대상)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아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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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587회 작성일 20-04-06 14:53본문
[사진설명] 최근 ‘검용언론전상서’를 써 진보언론 법조기자들의 분발을 촉구한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뉴스통신진흥회 집무실에서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전 한겨레신문)를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논터뷰]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에게 방황하는 진보언론의 길을 묻다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강 이사장은 최근 ‘검용언론전상서’를 써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 법조팀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허재현 기자도 지난해 말 ‘한겨레 법조팀의 검찰 편향성의 문제’를 다룬 글을 SNS에 공개한 바 있습니다. 강 이사장은 1976년부터 언론계에 몸담았고, 허재현 기자는 2007년부터 언론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30년이나 차이나는 선후배 관계이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가치관을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동시대의 언론인이 될 수 있지 않나 판단했습니다.
진보언론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진보언론을 응원해온 많은 국민들이 진보언론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미래를 위한 성장통입니다. 반면 진보언론 기자들은 국민들이 언론의 사명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섭섭함을 표합니다. ‘진영주의에 갇히지 않는 성역없는 권력감시’라는 사명을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진보언론 기자들과 독자들 사이의 옅어져가는 신뢰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 주제를 놓고 강기석 이사장과 대화를 해보았습니다. 정답을 제시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해법을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유명 저널리스트 레오 로스텐의 말처럼, 저널리즘의 객관성은 어차피 불가능합니다. 여러 주관들의 총합이 총체적으로 객관에 다가가게 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원로 언론인 강기석 기자의 주관적 해법 한 가지를 더하고자 합니다.
“진보언론 젊은기자들이 더이상 수구(척결대상)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아 큰 문제”
-선배께서는 ‘검용언론전상서’라는 글을 써서 검찰의 입만 보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후배 기자들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후배 기자들은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여 정부 감시를 게을리하자는 거냐며 반발합니다.
“정부 감시를 게을리하라는 게 아니라, 흉악한 수구세력들을 더욱 날카롭게 감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수구세력은 기본적으로 흉악합니다. 지금 우리 후배기자들은 이들을 교정 가능한 어떤 세력으로 피상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독재 정권을 경험 안해봤기에 그런 거 같습니다. 한국 보수를 참칭하는 이 수구세력들은 독재 세력의 후신이고 그들의 철학을 이어왔습니다. 이들은 박멸해야 할 대상입니다. 수구세력으로의 정권교체는 용인할 대상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진보언론 기자들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중립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습니다. 선과 악의 가운데에 서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악의 편에 서는 겁니다.”
-맞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그런 연설을 하셨지요. “선과 악의 가운데서 중립을 취하고 아무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악의 편에 서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갑제같은 언론인도 대중집회에서 저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젊은 진보언론 기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편이면 선이고 다른 편은 악이냐. 그런 논리가 진영주의 아니냐.’ 이런 고민인 것이죠.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를 군사독재와 싸워가며 쟁취해낸 세대이고 후배들은 그런 세대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가 일단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신문사의 고위 간부들도 김대중 정부 때 입사한 사람들일 겁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되었을 때 신문기자를 시작해서, 저와는 경험이 또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의 차이를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선배의 생각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언론에 관한 정책만큼은 확실히 지난 보수정권 10여년은 악의 행태를 보였습니다. 정직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직기자가 되고, 진보언론 출신이라고 해서 공영방송 사장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수년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한겨레 재직 기간 내내 어떤 문화적 쇼크 상태에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확립되어 왔던, 그래서 더이상 뒤로 후퇴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던 ‘민주주의의 룰’ 같은 게 대통령 한명 바뀐 뒤로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단순히 진보 보수의 대립으로만 분석해선 안된다고 깨닫게 됐습니다.
“조중동같은 곳을 언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태도는 큰 문제입니다. 그들은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중립과 공정, 객관과 진실 이런 가치를 실현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권력 감시의 기능조차 하지 않아요. 조중동은 그냥 기득권층과 한편이고 사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진보언론이 그들과 한편이 되어 권력 감시를 해서는 안돼요. 조중동은 진보언론 기자들이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적어도 2000년대에는 조중동 폐간운동 같은 시민운동이 활발했는데 지금은 그게 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20대들은 ‘조중동은 보수세력을 대변하는데, 어찌 악으로 규정하느냐. 그런게 진영논리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이 진보언론 젊은 세대의 한 축을 구축해가는 듯해 우려스럽습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후배들이 조중동을 비판하고 적의를 불태워야지, 그들을 협력의 대상이나 동업자로도 여겨서는 안돼요. 또 공영언론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연합뉴스,와이티엔(YTN),서울신문 정도의 언론과도 힘을 합쳐서 조중동에 맞서 싸워야 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보고 과격하다고들 합니다. 원래 과격한 건 젊은 기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건데.”
-진보언론 젊은 기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진보언론 선배 그룹들이 사내에서 헤게모니를 다시 장악해 나가야 합니다. 양보해줘선 안돼요. 진보언론 내부를 가만 들여다보면, 허약한 민주국가같은 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편집국장이 있기는 한데 편집국장은 그냥 ‘킹 아더’ 같은 존재입니다. 그 밑에 ‘봉건 영주’같은 실세 후배 기자들이 있어요. ‘킹 아더’를 위협하는 막강한 영주들이지요. 편집국장은 그저 영주들끼리 싸우지 못하게 중재하는 역할 정도를 해요. 법조팀장이나 이런 친구들이 현장에서 보고를 올리면 편집국장이 그냥 거기에 따라가요. 정치부장, 여당 반장 이런 친구들이 다 봉건 영주예요. 진보언론 기자들은 점잖은 상식주의자들이라 현장의 보고에 더 권위를 두지요. 그런데 현장에서 오류를 범하면 그걸 바로잡아주는 게 편집국장의 역할이거든요. 그 역할좀 했다고 한겨레 후배들이 비판 대자보를 쓰는 것 보고 놀랐어요.”
-공감합니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편집국장보다는 현장에 나가 있는 법조팀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법조팀을 안거쳐본 국장들이 뭘 아느냐는 식인 거지요. 그러니까 뭣도 모르는 편집국장이 정권의 눈치나 보면서 법조팀 기사를 막았다고 판단해버린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진보언론 법조팀이야 말로 검찰에 사로잡혀 있는 형국인데.
“젊은 기자들이 스스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볼 기회가 없어서 벌어진 오류 같아요. 우리 때는 1988년 언론노조 등을 만들 때 그 엄혹한 사회분위기에서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투쟁했거든요. 그때 세웠던 원칙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언론사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지금 후배들은 그런 고민없이 바로 기자 생활을 시작해요. 젊은 기자들이 고민이 없다는 게 아니라 고민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뭔지 공부해서 아는 것과 민주주의의 내용을 직접 만들고 확립해간 세대의 차이 같아요. ”
-어떻게 하면 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후배 언론인들을 배출할 수 있을까요.
"기자 선발 제도를 바꿔야 해요. 지금은 다 똑같잖아요. 소위 주류매체에서도 ‘sky 출신’으로 기자를 뽑아요. 뽑고나면 다 그쪽 애들이지요. 그러면 대충 비슷한 교수들과 비슷한 교과목으로 학습된 학생들만 언론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조중동하고 똑같은 기자들이 나오는 겁니다. 힘있는 부처에 출입하면 기자로서 성공하는 것 같고, 누구 하나 ‘조지는’ 기사 쓰면 성공하는 것 같고, 출입처에 안주해서 그저 그런 비슷한 기사나 쓰고. 출입처에서 사고 안치고 오래 버티면 능력있는 기자가 되어가지요. 출입처와 관계가 좋은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쓰기 어려워요. 슬슬 출입처 대변인처럼 되어가지요.”
-한겨레에서 제가 좀 당혹스러웠던 게 출입처에서 오래 버티고 그들과 사이 좋게 지내는 기자들을 향해 ‘저 사람들은 대체 왜 저렇게 같은 일을 오래 하는 거지?’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게 아니라, 되레 존경스럽게 바라본다는 점이었습니다. 출입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감시하다 보면 그들과는 상대적으로 싸울 일도 많아지고 사이가 멀어지는 게 정상이거든요.
“검찰에 찍히면 회사에서 욕먹고 후배에게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그렇게 몇 년 반복하면 비겁하거나 약삭빠른 선배들만 법조팀에 남게 돼요.”
-제가 한겨레 법조팀원 개개인들을 문제 삼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들이 검찰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그 구조를 지적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강희철 법조 선임기자에게 검찰 그물망에 사로잡힌 ‘선한 괴물기자’라고 표현했는데 그만 고소를 당했습니다.
“저는 허 기자가 한겨레에서 계속 일했다면 역시 선한 괴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그 출입처 핵심 간부들과 자꾸 부딛히는 허 기자를 계속 키워주기도 부담됐을 거고요. 그러면 점점 허 기자 스스로도 그냥 선한 사람이 되어가려 했을 거예요. 선한 괴물까진 아니지만, 그냥 선한 기자.”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아까 얘기 한 대로, 진보 언론 기자들과 공영 언론(KBS,MBC 등) 기자들이 연합해 기자단을 새로 만들어야 해요.”
-기존의 출입처 기자단을 없애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건 그대로 두고, 공정 보도를 위한 기자단을 새로 만들어 연대하는 것이지요. 출입처에서 기자들 갖고 노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출입처 기자단이 아니라 별도의 망을 구성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쪽 출입처 기자단에서 ‘빨대’ 꽃은 어떤 루트를 통해 단독 보도가 나오더라도, 교차 검증하지 않고 섣불리 보도하는 관행을 문제 삼는 기자단이 있어야 해요. 지금은 그냥 속보경쟁 하기만 바빠서 서로 견제들을 안해요. 그러니 다 똑같아지는 겁니다.”
-맞습니다. 저도 법조팀 근무를 해봤지만 도무지 교차검증하고 확인할 시간이 나지 않아요.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하도 타사에 물먹으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검찰 수사속보좀 얻을 방법 없는지 궁리나 하고 있더군요. 한겨레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기획성 법조기사를 써보겠다는 의지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어요.
“시간을 안주니까 그래요. 검찰이 ‘너 그거 빨리 안쓰면 다른 애 줄거야’ 그러면 초조해지지요. 계속 그렇게 가면, 진보언론들도 조중동식의 (교차 검증 소홀한) 특종보도만 쫓게 돼요. 이런 이유로, 진보언론과 공영언론 기자들이 저들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계속 있으면 안돼요. 따로 기자단을 만들어서 저놈들이 뭐갖고 떠들거나 말거나 철저히 확인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그런 대항세력을 만들어야 해요. 어떤 게 진보언론이고 공영언론인지, 개념도 없고 그저 일사불란 움직이는 조중동의 영향이나 받고 그걸 저널리즘으로 착각하고.”
-한두 언론사 가지고는 안될텐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보언론 기자들만 따로 나와서 기자단을 만들면 안돼요. 조중동은 고립시키고 거기에 대항할만한 다른 기자단을 새로 만들어야 해요, 가칭 ‘참언론 기자단’ 이라 합시다. 참언론 기자단에는 진보언론·공영언론 그리고 뉴스타파나 허 기자 같이 대안 매체 소속 기자들도 들어가서 같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처음엔 물을 좀 먹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참언론 기자단이 팩트를 함께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더 큰 특종이 나옵니다. 그렇게 참언론 기자단이 영향력을 키워야 합니다.”
-선배께서는 진보언론 기자들이 민주당 정치인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후배들은 민주당 정치인이 되는 것을 보수정당 정치인이 되는 것과 똑같이 보는 듯 하던데 저는 견해가 다릅니다. 나쁜 정치 세력에 몸담는 거도 아니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언론 개혁을 위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동일하게 비판합니까.
정필모 전 KBS 부사장, 김의겸 한겨레 기자가 정치권 들어가는 건 이렇게 분석해야 합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하긴 했지만,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랑 비슷해요. 우리 사회 온갖 권력에 의해 포위된 허약한 정권입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 희생해가면서 험한 길 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매도하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국회에서 대체 누가 언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런 심지 굳은 선배들을 막말이나 일삼고 뒷구멍 거래하듯 정계 진출한 민경욱(전 KBS 앵커)과 똑같이 보면 안되지요.”
-저도 한겨레 신입기자 시절에는 여와 야(진보-보수)를 동일하게 보고 동등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진보언론 후배들이 최근 보여주는 기계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어느정도 이해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고 제 눈으로 피해자들을 목격하다보니, 차츰 생각이 바뀌더군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단순히 보수정권이 들어선 게 아니라, 민주주의 파괴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는 것을 깨닳았어요. 그러다보니 저는 자연스레 진영주의 기자가 된 것 같습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진영이라고 할까요. 저는 분명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진영’의 기자인 듯 합니다. 그런데 지금 진보언론 후배 기자들은 이명박근혜 정부 때의 각종 패악질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아닙니다.
“최근 한겨레 성한용 칼럼을 보면, ‘여야가 똑같은 놈들이고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 이러한 정치 혐오증이 퍼지면 뒤에서 웃는 놈들은 따로 있다’고 썼더군요.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프레임은 수구세력들이 만들어 퍼뜨리는 프레임이에요. 어떻게 정치인이 다 똑같습니까. 3급수와 1급수가 똑같이 더러운 물은 아니거든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치적 흠집은 있는 정치인이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명박하고 똑같이 부패하다고 평가합니까. ‘논두렁 시계’ 같은 허위 보도를 낸 건, 노무현과 이명박을 똑같은 사람으로 비치게 하는 착시를 낳았어요. 현실적으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치인’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차선의 정치인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진영주의자’로 공격하는 게 지금 젊은 진보언론 기자들의 태도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하는 소리이지요. 우리는 군사정권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들을 지층에 퇴적물 쌓듯 하나하나 쌓아왔는데 요즘 세대는 그런 경험이 없다보니, ‘여야 정치인은 다 똑같아. 기자인 우리는 무조건 중립이어야 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선배 세대들이 꼰대같은 이야기 한다고 비판하지 않을까요. 저 젊었을 때도 어른들이 ‘너희들이 6·25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다’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면 기분 안좋았거든요.
“70대 이상의 기성 세대는 학습을 통해 세뇌된 반공주의를 갖고 살았어요. 국가적으로 국민교육헌장 따위를 외며 자란 세대입니다. 해방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사회주의에 동조하거나, 6·25 전쟁 이후에는 역으로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를 멀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시대를 거친 분들입니다. 민주주의를 외쳤다가는 맞아죽을 뻔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토론이 가능한 시대이지요. 선배 세대가 겪은 경험을 얘기해줘야 하는 시대입니다. 경험을 나누자는 것 뿐입니다. 지금은 되레 후배들이 스스로 선배들의 경험을 들으려 하지 않고 ‘역꼰대’같은 행동을 하는 형국입니다.”
-저도 한겨레 후배들의 대자보를 보고, 아는 선배에게 ‘애들이 뭘 모르고 이런 대자보를 쓰면 좀 선배들의 경험을 가르쳐주는 게 어떠냐’고도 해보았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잃은 뒤 한겨레 편집국은 ‘검찰에 이용당하지 않는 법조 취재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수년간 많은 논의를 해왔거든요. 조국 국면에서 편집국장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건, 진영주의 탓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한 신중함이었는데 후배들이 완전히 오해한 거잖아요. 선배들이 무조건 후배들의 생각을 민주적으로 존중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 합니다. 아는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저 ‘후배들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는 선배가 되어야 한다’며 겸손한 태도만 보이고 말더라고요,
“한겨레·경향의 중견급 차장·부장급 기자들이 참언론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신념을 갖고 후배들을 이끌 준비가 없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지금 차장·부장급 선배들은 독재정권에서 언론자유실천운동을 한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던 세대인데, 그런 정신이 아래 세대로 연결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게 안되고 있어요. 아까 얘기했듯, 봉건영주같은 중간급 기자들 앞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게 참 언론입니까.
“제가 공식화 한 게 있어요. ‘무편나오뻔’. 무지,편향,나태,오만,뻔뻔함. 이 다섯가지를 갖추면 소위 ‘기레기’입니다. 출입처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그대로 갖다 쓰는 무지와 나태함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등을 가지고 있는 ‘기레기’들이 많아요. 참언론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런 건 선배들이 좀 가르쳐야 해요.”
-저도 한겨레에서 신입 후배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었고, 2017~2018년 사이에는 교육 책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취재하는지 기능적인 훈련만 시켰지 진보언론이 갖춰야 할 저널리즘에 대한 건 한번도 안가르쳐줬어요. 그런 건 각자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지 선배가 가르쳐주는 건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선배들로부터 전수받거나 영향을 받은 진보언론에 관한 철학을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전수하지 않았던 게 지금 한겨레 후배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하고 제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게 리더십,인사,교육,소통,책임입니다. 리더십을 가져가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사장과 편집국장이 후배들을 리더십을 갖고 이끌어가야 해요. 후배들의 주장을 무조건 경청하는 태도도 좋지 않아요. 사장이 왜 경영만 해야 해요? 언론사 장사 밑천이 콘텐츠인데. 그 콘텐츠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지요. 자기 회사 콘텐츠에 확고한 판단이 없는 사람이 사장을 해서는 안돼요.”
-한겨레 젊은 후배들은 전문 경영인이 사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하더군요.
“쓸데 없는 얘기에요. 경향신문이 한화로부터 독립할 때인 20년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전문 경영인은 언론이 뭔지 잘 몰라요. 주기적으로 ‘전문 경영인 도입론’은 계속 나올 겁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언론 시장에서는 어떤 누가 오더라도 경영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랑 친한 진보언론 동료들이 제게 늘 부탁하는 게 ‘제발 너만이라도 기레기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합니다. 진보언론 기자들은 ‘기레기 평가’를 듣는 것을 억울해 합니다. 저도 기레기 소리 듣는 때가 많아서,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시민들이 기자 전체를 향해 ‘기레기’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참언론 기자들은 너무 서운해할 필요 없고, 그 ‘기레기’들에 맞서 싸우면 됩니다. 조중동 기자들은 회사 눈치 보여서 싸울 수 없습니다. ‘참언론 블록’의 기자들이 힘을 모아서 ‘기레기’ 퇴치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은 출입처에 매몰돼 함께 행동하고 비슷한 속보 경쟁을 하니까 ‘기레기 물타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진보언론 기자들이 ‘기레기’들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한겨레·경향과 KBS·MBC·YTN·뉴스타파 등이 연합하면 제법 힘이 막강할 겁니다. 이들 그룹이 ‘기레기’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시민들은 그 둘을 분류하기 시작할 겁니다.”
-저는 한겨레 후배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은 더이상 ‘한겨레 기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해요. 저는 한겨레 기자가 되는 순간, 언론인 선배들이 쌓아온 민주적 저널리즘을 계승하게 됐다는 자부심으로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월급통장은 홀쭉 해도 마음은 내내 부자였어요. 저는 후배들이 저처럼 한겨레에 자부심을 갖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시민들이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비아냥을 할 때는, 제가 그 가난한 회사를 후배들에게 물려준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진보언론·공영언론 기자들은 축복받았다고 생각해도 돼요. 조중동 애들은 참언론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냥 기자 생활을 해야 하거든요. 무지해야만 사주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 수 있어요. 제가 앞서 말했듯, ‘기레기’와 분류되는 새로운 기자단을 연합해 만들어서 싸우기 시작한다면 시민들은 진보언론 기자들을 기레기들로부터 분리해서 바라보기 시작할 겁니다. 기자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할 기회는 아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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