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손가락칼럼] ‘나꼼수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진보언론 기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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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257회 작성일 20-01-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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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손가락칼럼'은 휴대폰으로 SNS에 글쓰듯 간단히 쓰는 칼럼입니다. 형식은 가볍고 진심은 무거운 칼럼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허재현 기자만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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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2년 4월7일 조선일보 보도



'나꼼수 파문'이란 표현은 과연 올바른가

요즘 언론에 심심찮게 ‘나꼼수 파문’, '김용민 막말' 같은 제목의 보도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선거철이 다가오기 때문인 듯 합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 양질의 후보를 찾으라는 주문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나꼼수 파문'과 '김용민 막말' 같은 말의 기억들은 올바른 것일까요? 


소위 '나꼼수 파문'은 <조선일보>의 보도로 시작됐습니다. 2012년 4월7일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는 제목으로 1면에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김용민 후보가 국민일보 기자들의 파업집회에서 목사 가운을 입고 조용민 회장 일가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걸 전체 종교를 "척결대상"으로 비난한 것처럼 왜곡해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의제 선정 능력은 교활하고 뛰어났습니다. 김용민씨가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종교 사유화와 국민일보 기자들에 대한 탄압을 비판한 애초의 퍼포먼스는 사라지고 '막말 김용민'만 남았습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신문 수천부를 인천지역에 무료로 배포하며 사실상 국회의원 선거에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날 김용민씨만 부각된 '국민일보 파업 부흥집회'행사에 함께 하고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합니다. 김용민씨는 전체 기독교를 폄훼하지도 않았고, 외국인은 신문사의 대표이사가 될 수 없다는 '신문법'을 어기고 미국국적자인 조민제씨가 국민일보 사주로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대부분인 국민일보 기자들은 김씨의 퍼포먼스에 박수를 치며 크게 위로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이후 진보언론들까지 가세해 '김용민 죽이기'에 나섰습니다. 경향신문은 2012년 4월5일 사설인지 기사인지도 모를 기사<사퇴불가 버티는 김용민, 속타는 민주>로 김용민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정치 뉴스 보도처럼 보이지만 문장 곳곳에 기자의 부적절한 사견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아래에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여성·노인을 폄훼한 막말 발언의 수위가 높고, 후폭풍과 여론의 향배를 고려하면 김 후보의 처신은 '무책임한 버티기'와 '고집'에 가까워 보인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거취 문제는) 후보가 결정해야 한다. 당은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김 후보는 '사퇴 불가'를 외치고 있다. /  귀를 닫아버린 그의 몽니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경향신문은 8년전인 2004년 김용민씨가 인터넷 방송을 할 때 했던 일부 부적절한 말들을 찾아와 '2012년의 김용민'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조선일보만큼 악의적이진 않았겠지만, 김용민씨에 대한 편견이 가득찬 기사들을 내보내는데 경향신문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김용민씨가 오랜 기간동안 해왔던 여성·종교·노인에 대한 말들의 객관적 총체는 사라지고 그저, 조선일보가 만들어놓은 '막말 프레임'에서 경향신문은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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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2년 4월6일자 경향신문



경향신문 '나꼼수 파문' 제목의 문제점…"조중동과 다르면 되던 진보언론 시대는 끝났다"

2020년의 경향신문은 여전히 그대로인 듯 합니다. 2020년 1월16일 경향신문은 <민주, 초반부터 잇단 악재에 비상.."나꼼수 파문 재현될라"> 라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비하 설화 등을 전하는 기사입니다. 그러면서 아래의 문장을 삽입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꼼수 파문’의 후폭풍에 휩싸였던 2012년 총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출신 김용민 후보가 막말 논란에 부딪쳐 후보 사퇴 요구에 직면했지만 당은 공천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중도·부동층이 대거 이탈했고 과반 의석을 기대했던 민주당은 127석 확보에 그쳤다. 당시 한명숙 대표는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경향신문은 '나꼼수 파문'의 프레임이 자연발생적으로 대중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여전히 착각하고 있습니다. 김용민씨가 총선 입후보하기 훨씬 전인 8년전 인터넷 방송에서 한 일부 발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꼼수 파문'이라는 사건은 김용민씨가 원인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퍼뜨린 악의적 프레임의 사건임은 명백합니다. 보수세력의 궤멸을 걱정한 조선일보가 사실상 선거에 개입하려고 '빤스 벗고 뛴' 사건입니다. 경향신문은 이때의 기억을 이미 망각했다는 겁니까?


조중동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두고 이후 '광우병은 현실화하지 않았다'며 아직까지 비난하고 있습니다. 떠올려봅시다. 당시 시위의 본질은 '검역 주권 되찾기 '를 위한 시위였습니다. 광우병은 일종의 시위 소재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조중동은 이를 왜곡해서 당시 시위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꼼수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본질은 쏙 사라지고 그들의 일부 부적절한 말들만 갖고 나꼼수를 비난하는게 조중동입니다. 왜 이러한 왜곡된 프레임화에 경향신문이 자꾸 스스로 말려들어갑니까? 언론으로서 실력이 없는 겁니까. 아니면 악의적인 겁니까.

김진혁 한국종합예술대학교 교수(전 EBS 피디)는 경향신문의 최근 보도를 보고 자신의 SNS에 견해를 밝혔습니다. "기사 질이 수준이하다. '뇌피셜'스럽달까. 악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이런 수준의 기사를 일상적으로 쓴 것 같다. 진보매체가 제한적이었을 때는 진영 논리 속에 이런 문제가 묻혔던 것이다. 진보언론에 대한 지금 독자들의 항의는, 독자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변하고 독자들의 수준이 달라졌는데도 진보언론은 늘 하던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과점 시대의 나이브함 말이다. 조중동과만 다르면 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경향신문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진보언론 독자들의 수준이 과거와 다릅니다. 이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고 때로는 기자들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언론을 평가합니다. '김용민 막말 논란', '나꼼수 파문' 사건의 연출은 조선일보였고 나꼼수는 그저 각본의 소재였을 뿐이라는 것은 엄연한 팩트인 것을 독자들이 다 압니다. 불과 8년전 일이어서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집단 망각증에 걸린 것처럼 경향신문이 독자들을 기만해도 됩니까. 당시 국민일보 파업 기자들중 김용민씨와 나꼼수를 비판한 사람 한명이라도 경향신문이 찾아올 수 있다면, 제가 틀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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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20년 1월16일 경향신문의 보도. "나꼼수 파문"이라는 조선일보가 퍼뜨린 프레임을 그대로 제목에 반영하고 있다.



진보언론은 '나꼼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는 한가지 더 나아가 진보언론 기자들이 소위 '나꼼수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분석합니다.  경향신문뿐 아니라 한겨레 기자들과 얘기하다보면, 나꼼수와 같은 신생 콘텐츠들의 사회적 부작용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요약하자면, 진영언론이라는 것입니다. 진영언론의 부작용이라면 무엇일까요. 대체적으로 지나친 편가르기, 상대진영 비판을 위해 우리진영 허물은 감추기, 팩트 검증에 소홀함 등이 지적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진보언론 기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영언론'이 무조건 나쁜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영언론'이면서 진영언론이 아닌 척 하는 것은 문제지만, 진영언론임을 밝히고 진영의 입장을 설파하는 매체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면, 그건 독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니까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는 본인들이 편파방송임을 밝히고 하는 방송입니다. 목적은 편파적일 수 있지만 과정이 공정하면 되는 겁니다. 이외 소위 진영언론으로 분류될만한 많은 매체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디라고 굳이 밝히진 않겠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진영언론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매일노동신문같은 게 그런 것들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진영언론들로만 뒤덮여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주류 매체'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는 여전하고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저는 진영언론들이 특유의 화끈한 탓에, 주류 매체의 독자들을 끌고가 주류매체들을 대체해가는 것같은 지금의 현상에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진영언론은 분명 객관보다는 주관을, 우리 사회 전체의 공리보다는 진영의 이익을 먼저 고민하기 때문에 진영언론들이 주류언론을 대체하는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우리 사회 여론이 극단적 대결과 분열로 치달을 겁니다.


다만, 저는 진영언론이 주류언론의 보완재로서 기능하는 것까지 주류 매체들이 부인하고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꼼수나 알릴레오 같은 진영언론은 그 나름대로 진보 쪽의 주류매체가 하지 못하는 사회적 순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나꼼수가 아니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가 과연 그렇게 끈질기게 추적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알릴레오가 아니었다면 조국 일가 수사에 대한 검찰의 편향성에 대해 사회적 환기가 되었겠습니까. 진영언론이 팩트 검증에 소홀하다면 그 자체로 비판받아야겠지만, 이들 언론들이 과연 한겨레·경향보다 팩트 검증에 소홀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현직 언론인인 제 눈에도, 김어준은 한겨레 사회부 기자 50여명 정도의 취재력을, 유시민은 경향 정치부 기자 50여명과 맞먹을 정도의 정보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솔직해집시다. 나꼼수와 같은 신생 매체들에 날카로운 진보언론사 소속 기자 동료 여러분. 이들이 부러운 것 아닙니까. 당신들의 영향력을 대체해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까.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변화해야 살아남습니다. 진보언론들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나꼼수 탓만 하면서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진보언론의 책임은 정말 없습니까. 대중의 눈높이는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 진보언론 기자들은 그간 얼마나 많이 성장했습니까.  최근 경향신문 법조팀 기사가 욕을 먹는 것은 진중권 교수의 주장처럼 진영주의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즈의 법조 기사들을 보십시오. 어떤 해외의 권위지들이 우리나라처럼 검찰 쪽 이야기만 듣고 단정하듯 수사 속보기사를 내고 있습니까.



나꼼수·알릴레오는 진보언론의 대체제 아닌 보완재 

대체제와 보완재를 구분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들이 기존 매체들을 대체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허재현 기자의 <리포액트>는 <한겨레>를 결코 대체할 수 없습니다. 덩치 큰 <한겨레>가 하지 못하는 진보 언론 역할의 일부를 <리포액트>가 채우는 것일 뿐입니다. <한겨레>독자도 계속 있어야 하고, <리포액트> 독자들도 함께 늘어야 합니다. 그게 진보언론의 선순환이자 상호보완입니다. 마찬가지로, <나꼼수>와 <알릴레오>와 같은 신생 언론들을 진영언론이라고만 폄훼하지 말고 기존 매체의 보완재로서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꼼수 콤플렉스'에서 이제 그만 좀 벗어납시다. 출현한지 10년이 되었는데도 대중이 아직 이들을 원한다는 것은 이들의 가치가 '신기루'같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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