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칼럼] 임미리 뒤에 숨는 경향신문…부끄러움은 누구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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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5,693회 작성일 20-02-20 14:40본문
※이 칼럼은 <평화나무>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임미리 고려대학교 연구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이 선거법 위반 여부가 논란입니다. 민주당의 고소가 과연 부적절했는지와 별도로 경향신문에 게재되는 칼럼이 하루가 멀다하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경향신문의 데스킹 과정에 심각한 구멍이 나있는 걸까요. 실수가 반복되면 그것은 고의라고 의심받기 충분합니다.
임미리 교수의 글 이전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칼럼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을 향해 '좀비'라는 과격한 표현을 써서 논란이 됐습니다. 그는 지난 1월5일 웰빙인 좀비월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조국 가족 이야기만 하면 성한 정신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경향신문에 실었습니다. 개인 에스엔에스도 아닌 경향신문 지면에 이러한 표현이 실림으로써, 경향신문 독자들은 '경향신문이 문재인 지지자들을 좀비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등장한게 문제의 임미리 교수 칼럼입니다. 그는 아예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찍자'는 표현을 썼습니다. 역시 개인 에스엔에스도 아닌 경향신문의 지면에 실리는 칼럼이라 문제가 커졌습니다. '민주당 후보들을 낙선시켜야 한다'는게 경향신문 편집국의 견해는 아닐지라도 엄연히 이 칼럼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큰 표현이었는데 편집국에서 어떤 수정 과정도 없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칼럼은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해 경고처분을 내렸습니다.
임미리 교수의 칼럼을 두고 민주당이 고소한 것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 칼럼이 선거법 위반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경험한 바 있습니다.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중 모 대학 학생들이 '새누리당만 빼고 찍자'라는 선거운동을 한 적 있는데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선거운동 기간에 했으니까"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즉,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때 비슷한 표현을 공적인 지면에 게재하며 선거운동을 하면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인 겁니다. 이 공직선거법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올바른 법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나, 현행법이 그렇다는 겁니다. 법이 옳든 그르든, 언론사는 공직선거법을 준수하며 보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려할 점은, 사실 경향신문 편집국 내 칼럼 담당 기자가 충분히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큰 칼럼임을 인지하고 임미리 교수에게 칼럼의 수정을 요청하거나 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미리 교수는 지난 1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 한 인터뷰에서 앵커의 "경향신문에서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수정요청) 이런 이야기는 없었냐"는 질문에 "사실은 칼럼을 거부당할까 우려했는데 되레 오피니언 담당 팀장께서 굉장히 화통하신 분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경향신문이 선거법 위반 여부를 고민조차 하지 않고 칼럼을 실었다는 정황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겨레에 근무할 때 토요판팀에서 외부 필자의 기고글 관리를 1년여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필자가 써오는 글은 사실 담당 기자가 충분히 읽어보고 이런저런 수정요청을 합니다. 글의 논조를 고쳐달라는게 아니라, 주장에 대한 논리가 부족하면 그것을 채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명예훼손성 우려가 있는 표현도 고쳐달라고 합니다. 물론, 필자에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이런 요구는 언론사와 필자의 신뢰도 모두를 지키기 위한 과정입니다. 좀더 적나라하게는, 권위지에 글한번 싣는 것이 개인 인지도 향상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려는 필자들도 있습니다. 기자는 언론사의 신뢰도 유지를 위해 이런 악성 필자들을 걸러내야 하는 의무 또한 있습니다. 진보 정론지인 한겨레에 양질의 글이 실려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이기도 하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임미리 교수를 담당하는 오피니언 담당 기자였다면 해당 글의 수정을 여러차례 요청했을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글의 논조가 아니라 주장에 대한 근거를 채우고 논지 전개 과정의 모순을 바로잡는 것에 대한 요청을 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임미리 교수 칼럼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임 교수 칼럼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조국 법무 장관 임명 이후 대중이 둘로 갈라졌다. 양쪽으로 집회가 커지고, 정치혐오가 커지고 있다. 탄핵 촛불의 주역은 민주당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전 노릇 한다. 촛불의 성과를 민주당이 다 가져가 죽써서 개 준 격이다. 재벌개혁 물건너갔고 노동여건은 더 악화할 조짐이다. 이제는 선거에만 매달리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달콤한 선거 공약이 배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민주당만 빼고 찍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이글의 첫번째 문제. 정치혐오가 커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근거 제시가 없습니다. 여론조사기관 <앰브레인>은 지난해 12월 '415 총선에 꼭 참여 하겠다'는 여론조사에서 20대는 72.0%, 30대는 84.7%, 40대는 86.9%, 50대 77.6% 의 응답율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치혐오가 커지고 있다기 보다는, 정치양극화가 진행되어 어떤 식으로든 꼭 총선에서 정치적 판단을 행사하겠다는 지표인 것이지요. 임 교수의 주장은 이렇게 간단히 무너지는데, 칼럼 안에서 관련 분석은 전무합니다.
'촛불의 성과를 민주당이 다 가져갔다'라는 표현은, 우리나라는 간접 민주주의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의 요구가 국회의 입법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임 교수의 저 문장은 논리적 보강이 없는 한 그리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게다가 글 말미에서는 '선거에만 매달리는 것을 중단하자'고 해놓고 바로 이어서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선거에 매달리지 말자면서 또 선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논리적 모순인 것이지요.
정리하면, 근거 제시가 충분하지 않은 피상적 인상 비평과 논리적 모순에 이어 '민주당만 찍지 말자'는 과격한 주장으로 끝나는 이 칼럼은 도저히 학자의 지적 생산물이라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수준미달입니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담당 기자가 임미리 교수에게 왜 어떤 수정 요청도 하지 않았는지 저로서는 의아할 따름입니다. 이러니, 경향신문이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는 것이지요.
비슷한 시기 한겨레에 실린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의 민주당 비판 칼럼을 보면, 임미리 교수의 칼럼과는 확연한 질적 차이를 살필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17일 한겨레 칼럼에서 "민주당이 재벌개혁 문제, 노동자 보호 문제, 부의 불평등 문제, 높은 자살률 문제, 학벌 계급 사회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보수정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민주당의 시대적 자명은 좋은 보수를 자임함으로써 가짜 보수를 퇴장시키고, 자신의 왼쪽에 진짜 진보의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교수는 "나치당의 정식 명칭은 실제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고 한국민주주의를 짓밟은 정당의 이름이 '민주정의당'"임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이 군사독재 시대의 질서와 싸운 점에는 민주정당임이 분명하나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개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절반만 진실(민주당)이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자들은 학자의 글에서 무릇 이러한 학문적 깊이를 기대하고 읽습니다. 민주당이 김 교수의 글에 얼마나 동의할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독일 연구자답게 '나치당의 정식명칭이 국가사회주의 노동자'임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의 실제 정책이 정당명의 가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는 아파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미리 교수는 '민주당에 경고하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경고는 그 대상을 아프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임 교수는 글에 어떤 학문적 깊이도 담지 못해, 그 대상을 아프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
이것은 경향신문 편집국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은 이번 일을 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민주당이 경향신문과 임미리 교수를 상대로 고소한 것이 적절했다는 게 아닙니다. 허재현 기자 역시 '나도 임미리다'라는 글을 개인 페이스북에 올려 민주당의 행위를 앞장서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경향신문 또한 자신들의 보도와 칼럼의 의도가 의심받을 정도로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것은 언론사의 무거운 위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저 '진영주의자들의 공격'이라고 간편하게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 경향신문의 미래는 없습니다.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대중의 풍자를 경향신문 편집국은 두려워 해야 합니다. 이낙연 전 총리가 민주당 고소 결정을 사과하며 '정당은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언론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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