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칼럼] ‘더탐사 탄압’을 외면한 민변에 보내는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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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3,858회 작성일 23-03-23 02:36본문
[사진설명] <더탐사> 압수수색 사건을 거론한 2022년 미국무부 인권보고서
'2022년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한국 편'에 <시민언론 더팀사> 압수수색 사건이 담긴 것을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어쩌다 남의 나라 정부한테서 위로를 받는 지경이 되었는지 참담합니다. 그간 많이 해왔던 윤석열 정부를 다시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비판하려고 쓰는 글입니디.
강진구 기자의 구속심사를 앞둔 최근 어느날 저는 민변 언론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민변에 강진구 기자 구속시도를 두번이나 하려 드는 경찰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 보도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부가 기자의 휴대폰을 빼앗고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심지어 법원이 한번 기각한 기자의 구속을 또한번 시도하는 것을 인권단체가 내버려두면 안되지 않은가.'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혹시 더탐사가 청담동 게이트 관련 보도해온 내용을 모를 수 있을 것 같아 이것저것 물어보니 역시나 민변 변호사들은 조중동을 중심으로 보도된 첼리스트의 '다 거짓말이었다'는 경찰 진술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첼리스트가 친구들에게 '진실을 말하기 두렵다. 누구를 봤는지에 대해선 경찰에 노코멘트 하고 왔다'고 털어놓은 녹취록 보도는 민변 변호사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의하기보단 그들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더탐사> 보도 내용을 요약해서 건네주었고 '미국에서는 공직자를 쫓아다니는 기자들을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는 경우 모두 법원이 기각했다'는 연구 자료도 건네주었습니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 내용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습니다.
민변 위원장은 검토해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마음이 안놓여서 민변 모 변호사의 결혼식장을 찾은 민변 언론위원장을 찾아가서 허리 굽혀 꾸벅 인사까지 해가면서 다시 한번 부탁했습니다. 언론위원장은 저보다 나이가 어려보였습니다. 그래도 자존심 따위 차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강진구 기자의 구속만큼은 막아야 했으니까요.
이틀 뒤 연락이 왔습니다. 민변 언론위원장이었습니다. "기자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회의를 해보았지만 아쉽게도 성명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화가 나더군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유가 뭐죠?"
"기자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유가 뭔가요?"
"저희가 발표하는 게 도움이 오히려 안될 수 있습니다."
"그건 저희가 판단합니다. 거절하시는 이유가 뭐냐니까요?"
"말씀드리기 곤란한 사정이 있습니다."
더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겠더군요. 대충 짐작이 되었습니다. '부당한 언론탄압은 맞는 거 같은데 솔직히 <더탐사> 기자는 민변에서 돕기 싫다' 뭐 이런 설명을 듣고있다고 느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이나 다 하고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단체에서 인권탄압 당하는 사람들을 돕지 않는군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그냥 제 스스로 인권단체가 되고 말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진설명] 민변 언론위원장과의 카카오톡 대화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하면서 한참을 보냈던 거 같습니다. 어쩌다 민변이 저렇게 되었을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민변에 가입하는 걸 이제 '그냥 좀 멋져보이는 행동' 정도로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난 탓일까. 아니면 민변 여성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벌어진 현상일까. 강진구 기자가 과거 '박재동 화백 가짜 미투 사건 의혹 제기 한 것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면 정의당으로부터 '친민주당 성향 기자들은 돕지 말라'는 무슨 행동지침이라도 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더탐사>를 돕고 있는 내가 정말 틀린 걸까.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더탐사>에 자주 출연하는 기자입니다. <더탐사>의 보도에 동의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대체로는 그들이 우리 시민사회를 위한 좋은 언론사로 거듭나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저런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보도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그들이 부당한 탄압을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세기전 국제사회가 선포한 '세계인권선언문'을 다시 읽습니다. 19조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 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민변 변호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되어 있지,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한 치의 오류도 없이 보도한 기자여야만 한다'거나, '보편적으로 공감이 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거나, 기타 다른 조건을 붙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민변은 이제 인권 보호 대상에 조건을 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젠 당신들이 설명좀 해보십시오.
민변이라는 단체에 제가 심리적으로 의존해온 기간이 길어서일까요. 상대적으로 민변에 받은 상처가 깊고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가 제게 더 크게 위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 미 인권 보고서에서 언론 관련 이슈는 △<MBC>에 대한 탄압과 △<더탐사> 탄압 문제만이 실렸습니다. 그만큼 <더탐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만행은 국제적인 문제로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미 국무부가 '쥴리 관련 의혹' 보도를 두고 경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을 콕 집어 기록한 점에 주목합니다. '쥴리 의혹 보도'는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대단히 불편해 했고 저역시 그러한 비판에 공감하는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미 국무부 조사 직원이라고 해서 여성 인권에 민감하지 않을 리 없겠지요. 하지만 미 국무부는 보도내용에 관계 없이 정부가 기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구속하려 드는 것은 언론탄압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더탐사> 지키기에 나선 시민 허재현이 옳았다.' 이 한 마디를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가 대신 해주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씁쓸합니다.
[사진설명] 지난해 8월 <더탐사> 압수수색 규탄 외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저는 엄희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관련 중요한 보도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몇년 사이 한 보도중 가장 세상을 시끄럽게 할만한 내용일 듯 합니다. 그래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이게 보도되는 순간 제 휴대폰도 뺏기고 제 사무실도 압수수색 당할까봐요. 과거같으면 민변같은 변호사 단체에서 나를 지켜줄 거란 생각에 조금이라도 안심하겠지만 이젠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허재현은 <더탐사>의 출연 기자다.', '허재현은 정의당에 비판적인 기자다.' 민변 변호사들이 저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지 않을 거 같습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보도 직후 닥쳐올 수사를 피해 해외 망명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참담합니다. 윤석열 정부야 원래 인권이고 뭐고 내팽개친 집단이니 아무런 기대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인권단체들에마저도 이제 별 달리 기대할 게 없으니 씁쓸합니다.
그래서 그냥 각오합니다. ‘내 스스로가 인권단체가 되자. 내 스스로 언론민주주의를 지키자. 누구에게 부탁하지 말자. 악착같이 버텨내자. 그저 시민사회만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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