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손가락칼럼] 조국에게만 "그게 최선이었냐"고 물은 손석희...그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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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5,952회 작성일 21-11-23 02:05본문
"야. 너희들 솔직히 그거 밥그릇 싸움 하는 거잖아!"
2013년 어느날이었다. 손석희씨가 <한겨레> 기자에게 전화로 항의하듯 쏘아붙였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언론인들이 종편 출범에 반대하며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석희씨가 JTBC 사장으로 가는 것이 온당하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으로 기억한다.
놀라웠다. '내가 알던 손석희가 저 사람 맞아? 어떻게 종편 출범에 대한 언론계의 우려에 대해 겨우 저정도 천박한 인식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나는 손석희를 안 적이 없었다. 아니, 언론계에서 그의 성향과 속내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손석희는 포장되어 있었고, 포장지는 늘 그럴 듯 했고, 또 손석희라는 콘텐츠 자체가 나쁘지도 않았다.
포장지를 함부로 뜯기엔 너무 예뻤다. 그래서 제대로 그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들어본 이도 별로 없고, 딱히 비판적으로 바라볼 이유도 없었다.
그냥 손석희는 언론계에서 이미지 좋은 신화처럼 존재해도 썩 나쁘지 않았기에 언론계가 '내버려둔 채' 그렇게 존재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손석희씨가 <JTBC> 사장으로 옮겨간 뒤 내가 비판적 시선으로 그를 검증하듯 지켜본 것이.
그러나 그는 <JTBC>로 가서도 그런대로 괜찮은 앵커였다. 국정농단 사건, 세월호 침몰 사건 등에서 확실히 <JTBC>의 보도는 괜찮았다.
딱히 비판할 건 없어보였다. 다소 오바스러운 알파잠수함 김종인 대표의 인터뷰나, 서해순 검증 인터뷰, 그리고 안희정 비서 인터뷰 등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다른 종편 뉴스들보다는 훨씬 점잖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손석희씨라는 포장지가 워낙 예뻐서 뭐라고 나서서 비판할 엄두가 안났다는 게 더 맞는 말일까. '굳이 뭣하러 손석희를 비판하나. 나도 취재하기 바빠죽겠는데. 내가 집중해서 비판할 적폐 언론인들은 따로 있다.' 그렇게 손석희라는 언론인에 대한 비평을 나도 계속 방기해버렸다.
그러다가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2019년 그는 이른바 조국 정국 때 혼란스러워했다. 검증 안된 검찰발 뉴스들을 <JTBC>도 무차별적으로 내보냈다. <한겨레>도 똑같은 짓을 했기에 손석희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중은 적잖이 실망했다. 그러다 조국 장관이 사퇴했던 그날 밤 손석희씨는 앵커 브리핑에서 ''피 묻은 셔츠는 이제 그만 넣어두자"는 주장을 했다.
나는 기겁을 했다. '뭐지. 저 허무한 양비론은?' 손석희는 '윤석열이 일으킨 검란 사태'를 그냥 '조국 VS 윤석열' 의 대립사건 정도로 보는 듯 했다. '이제 어느 한쪽이 싸움을 멈췄으니 대중들도 촛불을 그만 들라'고 한심한 논평을 하는 듯 보였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손석희여 돌아오라!"고 손팻말을 들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손석희는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저정도의 언론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파악한 것이지만 언론단체들 사이에서 손석희에 대한 평가는 대충 나와 비슷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만, 굳이 겉으로 긁어부스럼 내듯 떠들지 않았을 뿐.)
손석희가 지난주 <MBC>(시선집중)에 출연했다. 반가운 마음에 라디오를 귀기울여 듣는데(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손석희를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부류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그는 조국 정국 때의 소회를 밝혔다.
실망스러웠다. 그는 "당시 굉장히 괴로웠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냥 조국 장관을 향해 "그 때 그게 꼭 최선이었냐"고 묻고만 마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는 2019년의 검란 사태를 '조국 VS 윤석열'의 대립 사건처럼 바라보는 기계적 양비론에 멈춰 있었다.
집안에 강도가 들었다 치자. 집주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집주인은 강도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부대끼며 싸웠다. 상처를 입었다. 강도는 끝내 집을 털었고, 집주인은 피를 흘린 채 병원에 실려갔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심판자처럼 나타나 "그 때 꼭 그게 최선이었냐"고 피해자에게 물었다 치자. 이게 말이 되는가? 엄연히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는 사건인데, 가해자를 비난하고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피해자한테만 질문을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손석희는 딱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왜 유독 윤석열에게는 2019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질문을 하지 않는가? 왜 늘 우리 사회는 조국에게만 '너 왜그랬어?'라고 묻느냐는 것이다.
조국은 검찰개혁을 하려다 멸문지화를 당했다. 검찰개혁은 국민의 주문이었지, 무슨 조국 가족의 영리활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검찰총장 지위를 남용해 조국 가족을 탈탈탈 털어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조국 가족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윤석열 가족은 그 일로 무슨 피해를 입었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조국한테만 '너 왜 그랬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고 자빠졌다. 추측하건데, 손석희는 뉴스룸에 앉아 <JTBC> 법조팀이 가져다주는 오염된 검찰발 정보들 속에 파묻혀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지혜를 깨닫으려면 실천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언론인으로서 나는 이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기자가 중용의 지혜를 깨닫으려면 현장 취재 경험이 많아야 한다'고. 책상에 앉아 남이 가져다 주는 정보들만 취합해 심판자처럼 팩트 해석을 하는 데 길들여진 언론인은 기계적 양비론에 빠지기 쉽다.
손석희는 좋은 언론인이지만 현장 취재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살벌한 취재 현장에 떠다니는 혼잡한 정보들을 헤집고 다니며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극복해온 기자들은 확실히 '책상형 기자'들과 차이가 난다.
현장형 탐사보도 기자인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와 손석희를 비교하면 금방 무슨 차이인지 알 것이다. 나는 강진구 기자의 모든 글과 보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취재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일단 그가 수집한 팩트에 대해 신뢰는 하고 본다. 손석희가 가끔 결정적인 순간에 양비론 따위에 빠지는 게 이런 '취재 경험의 결함' 탓이 크다고 본다.
손석희가 뉴욕특파원으로 간다고 들었다. 기왕 취재 경험을 쌓기로 한 것이니 신입기자처럼 돌아가 혹독하게 취재훈련을 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그럼 그는 분명 더 진화한 언론인이 될 거라 믿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운데 서는 게 중립이 아니라, 어디가 기울어졌는지 살벌하게 들여다보고 기울어짐을 바로잡는 게 중립(중용)이라는 것을 그가 깨닫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선물'같았던 포장지여!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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