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이해찬 대표가 '서울 천박'이라 했다고? 한겨레 기자 칼럼이 천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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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7,584회 작성일 20-07-30 16:38본문
[사진설명]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후 세종시청 여민실에서 열린 세종시 착공 13주년 및 정책아카데미 200회 기념 명사특강에서 ‘세종시의 미래,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시대’의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지혜 <한겨레> 기자는 제가 특별히 아끼는 후배입니다. 2017년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 제가 당시 후배들 교육 책임자였고 지혜는 가장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던 후배입니다. 저는 후배들이 취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면 매섭게 질책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칭찬과 격려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연차에는 마음껏 오류를 범해봐야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건 오류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로잡고 고민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후배들에게 허재현이라는 존재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준 선배로 기억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지혜 기자는 수습기간을 끝내며 "허 선배는 제가 만난 멘토중 가장 최고였다"고 울먹이면서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 납니다. 이런 경험들 탓에 한겨레 후배들의 기사에 대해서는 제가 웬만하면 바깥에서 질책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건 제 인간적 고뇌입니다. <한겨레> 선배들이 저지르는 보도의 오류를 보면 화가 나지만 후배들의 오류를 보면 부채감을 느낍니다. 제가 더 아픕니다.
이렇게 서두가 긴 것은, 이제부터 이지혜 기자의 칼럼을 날카롭게 비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제가 하는 비판의 의도가 오해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글을 쓴 뒤 이 기자가 저를 국회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사라지면, 가슴 아프겠지만,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과 기자에 대한 비평은 어쩔 수 없이 적을 만듭니다. 그래서 제가, 이글을 쓰는 오늘 아픕니다.
이지혜 기자가 쓴 <그들은 버스 타고 '천박한 서울'로 출근하는 '우리'를 모른다> 칼럼은 이해찬 대표의 말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형편없는 글입니다. 이런 식으로 한겨레 입사 논설시험을 다시 치르고, 제가 심사위원이라면 당연히 낙제 대상입니다.
이지혜 기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이해찬 대표가 한 강연에서 "한강변에 아파트만 늘어서서...(중략)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이 기자는 "부동산으로 부를 쌓고 싶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꾸짖어선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 밖에 없는 나라를 만든 게 정치권인데, 여당은 부동산 욕망을 천박하다고 꾸짖을 자격이 있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일단 이해찬 대표는 "서울이 천박하다"고 이야기 한게 아닙니다. 역사 유적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개발된 프랑스 세느강과 한강 변에 늘어선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아파트들을 비교하면서, "서울이 천박하게 개발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수십년간 난개발에 가까운 수준으로 벌어진 한강변 주변의 부동산 정책과 문화를 천박하다고 말한 것이지, 서울과 서울 사람들에 대해 천박하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이건 이 대표 발언의 전체 맥락을 보면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표가 "서울은 천박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왜곡에 <한겨레>가 동참해서는 안됩니다.
또 지금의 정부 여당은 수도권으로만 집중되는 개발을 막기 위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던 정당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특히 지금의 야당이 이걸 계속 반대해왔기 때문에 반쪽 짜리 정책에 그쳐왔습니다. 결정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수도권 집중 개발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묻는 부분에서 고개가 갸웃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설명] 한겨레 칼럼 인터넷 제목 갈무리
'천박'이란 용어는 사실 사회학적 용어에 가깝습니다. 막스 베버는 일찌기 근대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벌어진 사회 현상을 두고 '천민 자본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시장의 자유에 맡겨두는 것에 기초하는데, 그 결과로 국가의 역할보다는 무질서한 욕망들이 자원의 배분을 최종 결정하게 되는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경제효율성은 더 떨어지게 되었고 빈부 격차와 노동자의 근로의욕 저하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진화발전을 가로막는 이러한 '무질서 자본주의'를 두고 '천민자본주의'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막스 베버가 염려한 천민자본주의의 부작용은 한국에서도 여러 부문에서 확인되지만, 특히 부동산 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의 주거 행복이 아닌 이윤과 수익만을 쫓는 부동산 정책이 오랫동안 뿌리내려왔고 거기에 기생하는 한국의 기득권층은 이 부동산 정책을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또한 기득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 역시 이 부동산에 대한 욕망으로 내몰려 '천박한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강변 아파트 중심 난개발은 그러한 부작용들이 수십년 쌓여온 현상의 '천박한 퇴적물'입니다.
이해찬 대표의 '서울 천박'은 바로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 현상을 경계하고자 하는 상식적인 지식의 경고인 것입니다. 이것이 대중을 상대하는 정당인의 언어로서 적절하냐는 비판적 질문은 가능하나, 적어도 이윤 만능에 빠진 자본주의를 걱정하는 진보언론이라면 이러한 지식인들의 경고를 대중에게 오해없이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진보언론 한겨레 기자가 되레 이해찬 대표의 말을 곡해해서 전달하고 있으니 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지혜 기자는 아직 신입 기자에 가깝습니다. 충분히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연차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칼럼에 대한 발제가 올라왔을 때 한겨레 편집국 내부에서 이를 바로잡고 지도해줬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능이 마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한겨레 편집국이 집단적으로 '철학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애써 이해하겠습니다. 설마 <한겨레>가 '한국식 자본주의의 현상으로서 부동산 정책에 침입한 천민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수용하겠다' 고 선언할리가 없잖습니까.
천민자본주의라는 사회학적 용어를 두고, '주권을 가진 시민을 천민으로 비유했다'는 식의 바보같은 비판은 설마 하지 않겠지요? 이제 이런 것까지 걱정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게 씁쓸합니다. 우리의 진보언론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천박한 수준의 칼럼과 사설은, 그 대상을 전혀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한겨레> 기자들이 매섭고 아픈 글을 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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