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10년만에...증언조작 국정원 직원 재판, 9일 1심 선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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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2,949회 작성일 23-08-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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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유가려씨에 대한 가혹수사 의혹을 받는 국정원 직원들이 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나가는 모습.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때 가혹 수사를 벌인 혐의(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이 9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관련 사건이 벌어진지 꼭 10년만에, 재판이 시작된지 3년만의 첫 선고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검찰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으로 관련 국정원 직원들의 가혹수사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공판 검사가 수차례 바뀌는 등 사실상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관측이어서 국정원 직원들의 유죄 선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 증거조작 사건, 다른 하나는 유씨의 동생 유가려씨에 대한 증언조작 사건이다. 


유우성씨가 간첩임을 증명하겠다면서 국정원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증거가 조작된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등에 대한 유죄가 2015년 확정되어 증거조작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가혹수사 끝에 “오빠가 간첩” 이라고 허위자백을 이끌어낸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뒤늦게 이뤄졌고 2020년 3월에서야 기소가 이뤄졌다. 


뒤늦게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재판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검찰의 재판 대응이 더욱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게 재판을 지켜봐온 '유우성씨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재판을 담당한 검사가 무려 6~7번이나 바뀌었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범죄 정황이 뚜렷이 담긴 검찰 과거사위 조사기록도 증거로 제출하지 않는 등 검찰이 재판 대응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는 게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판사 역시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마찬가지이다. 2020년 3월 기소된 국정원 직원 유OO(55·남),박OO(48·여)씨에 대한 재판을 맡아온 송승훈 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는 3년이나 1심 재판을 끌어오다 최종 선고를 앞두고 다른 법원으로 전근을 가버렸다. 3년간 재판을 해온 판사가 선고기일을 정해버린 뒤 전근가는 바람에 새 판사가 제대로 사건 내용도 파악 못한 채 선고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송승훈 판사는 사법고시 합격(사법연수원 30기) 뒤 2003년~2006년 국정원에서 근무하다 2008년 판사로 임용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번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재판도 유우성씨 변호인단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재판을 결정하고 피고인석에 차폐막 설치까지 허용했다. 이후 재판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급격히 떨어졌다.


유우성씨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양승봉 변호사는 <리포액트>와 한 통화에서 “송 판사가 2022년 12월16일 결심 공판 때 돌연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피고인 신문 필요성을 언급하며 2023년 세차례의 재판 기일을 추가로 지정해 선고기일 지정을 미뤘다. 공교롭게도 송 판사는 선고만 앞두고 전근을 가버렸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선고 부담을 피하려고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가려씨는 2012년 11월 초부터 2012년 12월 15일까지 약 45일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국정원 수사관 유OO(55·남),박OO(48·여)씨로부터 가혹수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유가려씨에 대한 가혹 수사를 부인하며 재판에서 유가려씨 더러 “정신이 이상한 사람”, “혼자서 착각에 빠져 오빠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자발적으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가려씨가 고문에 가까운 수사를 받은 것을 목격한 증인이 재판에 출석해 이를 반박했다. 유가려씨와 같은 시기 합동신문센터에 있었던 한 탈북자는 재판에 나와 "2012년 11월5일 가려의 뺨이 붉어서 어디서 맞았나보다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또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역시 “국정원이 유가려를 회유하거나 혐의 내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허위진술을 요구한 정황이 확인되고, 공판 검사의 질문에 대비하여 사전에 리허설을 통해 진술을 담합하고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서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위증을 하였음이 드러났다”고 2019년 밝힌 바 있다. 


유우성씨는 <리포액트>에 “내 동생(유가려)이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국정원 직원들을 상대로 같은 주장을 10년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내 동생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합동신문센터에서 폭행 당하고 잠도 못자게 하는 고문 수사 끝에 거짓 자백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재판 선고는 9일 오후 1시50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522호에서 열린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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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문재인정부 법무부 과거사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를 보면, 유가려씨에 대한 국정원의 가혹 수사 정황이 확인된다.



탄 원 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2012년 말까지 북한에서 살다가 그저 오빠(유우성)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려다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서 10년 넘게 고통을 받고 있는 유가려 라고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저의 억울한 마음을 읽어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얼마전 국정원 직원들의 재판에 출석해 제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과거의 고통이 떠올라 제대로 논리적으로 제 생각을 밝히지 못했던 거 같아 이렇게 다시 한번 글로써 재판장님께 호소드립니다. 부디 저의 글을 다시 읽어주시고 저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고문수사를 벌인 국정원 직원들을 꼭 처벌하여 주십시오.


한국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살기좋은 나라라는 것으로 알고 많이 동경해오고 가족과 함께 살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도 저에게 나쁜 짓을 벌인 국정원 직원들이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의 한국 생활은 여전히 악몽과 같은 현실 속에 있습니다.


저는 국정원에 들어간 이후로부터 모든 악몽이 시작되었고 저의 삶이 하루 아침에 짓밟히고 일반 사람으로서 너무 감담하기 힘든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런 삶을 견뎌왔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검찰과 국정원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을 감내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지금도 악몽을 꾸면서 정신 치료를 받으며 병원에 다니면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단 한번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고통을 어찌 다 말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0년 전 제가 맞닥뜨렸던 그날을 다시 떠올립니다.  저에게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같았고 수용소보다 못한 인권침해를 받으면서 24시간 저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는 독방에 갇아놓고 죄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죄를 뒤짚어 씌우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목숨을 겨우 이어가던 송장인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국정원에서의 지옥같은 생활이 하루하루가 너무 싫었고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는 저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저는 국정원에서 나온 지금까지 국가공무기관(국정원, 검찰청, 법원) 이 세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고 트라우마, 공황장애, 후유증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손과 발이 떨리고 너무 힘듭니다.


지금도 국정원 수사관들이 저를 조사할 때 벌였던 각종 폭행과 구타, 욕설, 협박, 가혹행위를 생각하면 무섭고 숨이 막힙니다. 국정원 수사관 유병화, 박영남. 이 두 사람 이름만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립니다.


이 두 사람은 아무 죄없는 저에게 폭행,구타,욕설,위협을 했습니다. 유병화 수사관은 저를 사정없이 때리고 발로 차고 뺨도 때리고 했습니다. 너무 맞아서 일어날 힘도 없고 너무 울어서 울힘조차 없는 저에게 박영남 수사관은 머리채를 잡아서 일으켜 세우고 뽀족한 구두 뒤축으로 저의 다리를 사정없이 치고 벽에 머리를 박게 했고 너무 맞아서 다리가 온통 시퍼렇게 멍들고 바닥에 주저않은 저에게 일어서라고 발로 계속 차고 저는 맞는 것이 너무 아파 손을 벽에 대고 기어오르면서 겨우겨우 일어났습니다. 일어서면 또 바로 서라고 하고 서있을 힘조차 없는 저에게 발로 또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저를 전기고문실 앞에 데려가 전기고문 시키겠다고 위협주고 했습니다. 전기고문이라니요. 물론, 실제로 전기고문은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는 오줌을 쌀 뻔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하나 힘든 경험은 모욕이었습니다. 이 두 수사관은 저를 합동신문센터 어떤 다른 건물 앞에 끌고가 제 등에 앞뒤로 시모봉지로 '회령 화교 유가려' 라고 쓰고 청사에 있는 사람을 다 불러놓고 보게하며 망신 주기를 했습니다. 특히 박영남 수사관은 저를 가리켜 사람들에게 "탈북자로 돌아온 나쁜년"이라면서 "다들 구경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청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내려와 제 앞뒤로 지나가면서 제 몸에 걸려 있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맞은 것도 너무 아프고 잘 서지도 못하였고 머리는 다 풀어져서 엉켜있었고 너무 울어 눈도 얼굴도 부은 상태였고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고개를 그냥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앞으로 지나간 라행옥 이모님이 저를 알아차리고 "가려가 아니냐"라고 했고 거기서 마주친 적 있습니다. 제가 당한 모욕들을 증명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저의 국정원 악몽은 거의 6개월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는 국정원이 저를 조사실로 부르더니 "오빠가 간첩활동을 했고 봤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저보고 "자백하라"고 계속 재촉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하여 아니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을 했지만 국정원은 저더러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몸과 마음이 땅으로 잦아드는 듯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국정원은 제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아서 한참을 울다가 책상 앞에 놓여 있던 우유 유리병을 깨어서 피를 보여 저의 결백함을 증명하려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시작을 만들어낸 것은 국정원 수사관 유병화와 박영남이었습니다. 이들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며 진술의 큰 틀을 잡아주고 거짓진술을 유도해낸 당사자들입니다.


물론, 저는 처음에는 오빠가 건첩이 아니라고 수백 수천번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수사관들은 저의 말을 단 한번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다 무시해 버리고 매일 똑같은 조사방법으로 하루하루 반복했습니다. 저는 반항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역작용이 되어 조사 분위기만 안좋아졌고 이 조사관들은 저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다가 주먹이나 발로 차고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말 안들으면 벽에 서 있게 하고 박영남 수사관은 책상에 있는 거는 다 저한테 던졌습니다. 유병화 수사관은 손에 쥐고 있던 플라스틱병으로 제 머리를 때리고 심지어 아무말하지 않아도 플라스틱병으로 심심하면 머리를 쳤습니다.


저는 유병화 수사관이 너무 무서워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눈도 못마주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들지 않으면 저한테 유병화 수사관은 소리를 지르면서 "고개들어, 똑바로서, 눈마주쳐"를 반복했습니다. 이 말은 항상 제가 조사실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 끝나기 전까지 듣는 말들이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때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나와야 때리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허위로 불러주는 문장을 외워서 적게 했고 또 고치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외운 대로 쓰지 않으면 또 또 때리고 이런 방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조사실만 들어가면 무서워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손발이 자동적으로 떨리고 그것이 장기적 트라우마가되고 매일매일 반복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하루하루가 계속 되자 저도 너무 지쳤고 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들어서 끝내 자실을 하려고 시도도 했습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조사실 방에는 방에 들어가기 전 몸 수색을 다 하고 철이나 머리핀 끈 같은 자살에 이용할 수 있는 물건들은 모조리 치워버립니다. 고민 끝에 저는 제 눈 앞에 자그마한 탁상 시계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탁상 시계로 자살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시계 앞면을 깨어서 그 조각을 꺼내면 뽀족한 날로 자살을 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방에는 24시간 저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조사 받기 시작부터 국정원에서 나오기 전까지 카메라가 있는 독방에 들어가 있었고 그 카메라가 항시적으로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사관들이 카메라를 통해 제가 자살하려는 것을 알면 안되기 때문에 수건으로 탁상시계를 감고 화장실로 들아가 큰 샴푸통으로 탁상시계를 바닥에 놓고 한참을 깨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드디어 시계 앞면이 깨어져 조각을 꺼내려고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박영남 수사관이 저의 방에 들어왔습니다. 박영남 수사관은 저를 끌고 또 조사실로 데려가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를 받고 방에 들어오니 탁상시계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저의 자살은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하루 하루를 산송장처럼 버텼고 달력도 없어서 오늘은 몇일인지라는 인식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달력을 하나 만들었는데 국정원은 그거마저 다 빼앗아갔습니다. 조사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앞은 너무 캄캄하고 수사관들이 이런 식으로 저를 아무 때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스럽고 무서웠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판사님께 재판을 받고 있는 국정원 수사관들은 정말로 인간 가죽을 뒤짚어 쓴 악마들입니다. 그분들이 제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빌어도 평생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가요. 자신들이 받아야 할 이익들에(간첩검거 포상금과 승진)에 눈이 멀어 죄없는 저에게 죄를 뒤짚어 씌우고 오만가지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의 일생과 그의 가족의 행복한 미래까지 망쳐버린 악날한 살인악마가 다름이 없습니다.



판사님. 당연히 간첩은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간첩은 만들어선 안되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 진짜 간첩들이 남한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지금 판사님께 재판받은 저 수사관들은 진짜 간첩들은 몰라보고 가짜 간첩을 진짜로 만들어 그저 포상금이나 받으려던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들은 제가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저를 고문해가면서 허위자백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제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은 국정원 직원들의 고문 수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판사님도 잘 아시듯 간첩조작사건이 밝혀진 오늘까지도 유병화, 박영남 수사관은 단 한번도 제대로 저에게 미안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 살인악마들을 제대로 처벌 받게 해주십시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처럼 무고한 백성들은 법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죄를 지은 나쁜 사람들은 반드시 꼭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저의 가족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의 탄원서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3년 7월 10일

                                                   피해자  유가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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