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어쩌다 칼럼] 촛불을 든 20·30에게…"문제는 조국이 아니라 ‘조국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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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5,938회 작성일 19-08-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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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원래는 허재현 기자의 페이스북에 개인적으로 쓴 글이나, 리포액트 독자 여러분께도 전해드릴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해 올립니다. 원래 칼럼을 쓰려던 것은 아니어서, 문패는 <어쩌다 칼럼>으로 달았습니다.​ 잡글에 가깝지만,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심경도 직접 들어보았고 그에 대한 판단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심스레 올립니다.



​강남 흙수저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 괴롭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딸 문제로 연일 시끄럽습니다. 저역시 지난 일주일은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학창 시절 부닥쳤던 어떤 장벽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 장벽을 함께 허물어주길 기대했던 조국같은 인물이 실은 그 장벽을 지렛대 삼아 제 자식을 열심히 챙겨왔던 사람임을 발견한 착잡함 탓입니다. 저는 2030 세대의 분노를 이해합니다.

만으로 38. 이제 2030세대를 막 벗어날 채비를 하는 나이입니다. 저는 199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은 '좌절'의 상처로 얼룩져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의 급우들은 지금껏 친구조차도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그 당시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은 때는 저도 그 기억을 다시 복원하게 되어 속상합니다.

저역시 '조국같은 부모님' 을 두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구룡마을같은 강남의 고립된 빈민가가 저의 거주지였고 제 아버지는 지하철 건설 노동자(네. 나중에 차승원 집 경비아저씨가 되신 그 분이요)였습니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탈 때마다 '이거 우리 아버지가 직접 선로를 깔은 곳'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지만(후에 안거지만 아버지가 일하시던 5호선 공사 터널 현장에서 한번은 큰 불이 났는데, 간신히 탈출해서 목숨을 건지셨던 일도 있었다고 해요. 저는 5호선 탈때마다 아버지께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그러나 제가 빈민 가정의 자식이라는게 적잖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사는 빈민이라니.

중학교 재학 때는 제 스스로도 놀랍게도 전교 1등을 하길래 '이대로 계속 노력만 하면 소위 'sky' 대학에 나도 갈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막일 하는 부모님의 자식답지 않게 나도 출세좀 해봐야지' 하는 세속적 욕망도, 어린 나이지만 일찍 품었습니다. 교과서만 예습복습 해도 그럭저럭 버티던 건 그러나 중학교 때까지만이었습니다. 저의 성실한 공부 방법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등수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충격을 받았지만, 일시적이겠거니 하고 넘기려 애썼습니다.

제가 반의 급우들 뿐 아니라 강남의 학부모들과도 함께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지난 시점에, 제 입학 성적이 뛰어난 편인 것을 알았던 짝꿍 친구의 부모님의 전화를 직접 받았습니다.  "학생이 공부 잘 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바뀐 수능 문제에 빨리 익숙해지려면 대비를 해야 해. 유능한 선생님 모시고 특별 과외반을 모집하는데 엄마한테 말씀좀 전하고 같이 하겠니?"


저는 과외는 체질이 아닌거 같다고 말하고 정중히 전화를 끊었지만, 뭔가 찝찝했습니다. 나는 분명 '공부에 성실한 허재현 학생' 그대로인데, 이와 상관없이 뭔가 경쟁에서 뒤쳐질 그룹으로 분류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고 할까요. 분기별로 납부하는 학교 등록금조차 성당의 어르신들이 모아주는 돈으로 내는 저희 집 형편에서 과외는 애초에 제 사전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아버지의 퇴근길 흙묻은 작업복을 보며, 그냥 내 실력으로 어떻게든 대학을 가자고 버텨보았습니다.

현실은 각오와 최면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언어영역 지문들과, 각종 수학 과학 영역 문제들은 마치 '넌 원래 머리가 나빠. 네가 감히 sky에 도전해?'라고 조롱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이건 아직까지도 제 부모님이 모르시는 건데 제가 모의고사가 치러지던 하루는 학교를 아프다며 결석했습니다. 근데 사실은 시험 치르기 싫어서 안간거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3%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성적표로 확인하는 순간들의 반복에 너무 무력감이 느껴져서, 그냥 아예 시험을 건너 뛰고 싶었습니다. '시험볼때마다 아픈척을 하자.' 이건 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탈출구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상위 3% 에 못들어가는 저를 보면서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머리가 좋지는 않은가?' 그렇게 서서히 sky의 꿈은 접었고 저는 겨우 중앙대에 입학했습니다. 중앙대도 참 좋은 학교이지만 20대 중반이 지나기까지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대부분 연고대 이상에 진학한 고등학교 때 급우들은 만나지도 않고 지금도 고교동창 모임에 나가지 않습니다. 죄송스럽게도 고교은사님도 찾아뵙지 않습니다. 그냥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편합니다. 상처입니다.

대학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 바로 인근에 대치동 고급 학원가가 있었고, 그곳은 자녀들뿐 아니라 강남의 부모들이 함께 대입을 준비하는 전쟁터같은 곳이었다는 것을요. 기껏해야 집앞 복지관에서 운영하던 공부방과 독서실 정도가 제가 누릴 수 있던 유일한 학업보조 수단이었던 저로서는, 중앙대 정도가 내가 갈수 있는 최선의 학교였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학창시절은 인터넷도 없던 시기라 무료 인터넷강의도 없고 정보에 너무 둔감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제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한 컴플렉스를 어느 정도 덜어낸 것은요. '문제는, 사회 구조였구나. 학벌 세습이란게 우리 사회에 있었구나.'

제 아버지는 아직도 제가 번듯한 아나운서로 커주지 않은 것을 아쉬워합니다. 아버지의 꿈이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거든요. '저는 못생겨서 신문기자가 제격이에요' 답하지만, 실은 하고싶은 말이 많지요. '아버지. 저는 어학연수 갈수 없잖아요. 아나운서 아카데미 다닐수 없잖아요. 치아교정 하는데 몇백만원은 들어요. 국제 인턴십같은거 하려면 그것도 돈들어요.' '이미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능력으로 연결되는 사회에 살고있어서 나는 아나운서 꿈을 접었다'고 설명드리기엔, 너무 부모님께 상처드리는 말 같아서 저런걸 굳이 말씀드리진 않지만요.

어쩌면 저도 '조국 부모님' 같은 분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패배한 경험 탓인지, 촛불을 드는 젊은 학생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어쩌면 저도 마음의 촛불을 함께 들었을 겁니다. 얼마전 만난 경찰 간부의 자녀가 고3인데 그 친구가 그랬다더군요. "진짜 누구하나 분신이라도 해야 바뀌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더군요. 저는 이 학생들의 박탈감과 분노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구 꼴통' 정치인의 선동 따위로 이 학생들의 박탈감을 절대로 폄훼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중앙대 졸업이라는 애매한 '학력 자본' 을 갖고 사회 생활을 하는게 아직도 좀 불편해요.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촛불 시위가 있다며 민경욱 의원이 '연대 졸업생도 함께 한다'고 호기롭게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중앙대 졸업생도 함께 하겠다'고는 차마 글을 쓸수 없다는 자격지심도 느꼈지요. sky 인생에 편입되지 못한 자괴감은, 이렇게 38이 되어도 지독하게 괴롭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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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한명 물러나는 것으로 학벌 세습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제 과거에 대해 좀 부끄럽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나열하는건, 제가 이제부터 하는 주장에 대해 '진영 논리'라든지 '아재 꼰대의 게으름' 정도로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과거 서울대 출입기자여서 조국 교수와는 이래저래 친분이 있었습니다. 최근 밝혀진 일들로 하도 착잡해서, 조국 교수와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고 짧게 의견을 교환해봤습니다. 따님 건에 대해서는 정말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등에 대해 안타깝고 죄송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당시 존재했던 제도를 합법적으로 활용한거였더라도 국민이 왜 화를 내는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스스로 "돌을 맞겠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아마도 조 후보자가 청문회장에서 적절하게 국민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그런 정도의 양심은 가진 사람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들로만 보면, 조국 후보자의 딸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충실하게 따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조 후보자의 부인은 강남의 학부모답게 발빠른 정보로 딸의 대입과 학업과정을 도운 것이고요. 강남 학부모들과 함께 치른 대입 경쟁에서 혼자서 장렬하게 싸우다 무릎꿇은 저도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조 후보자의 딸과 부인에게 화풀이 한다고 해결될 사회문제는 아닙니다. 정유라는 '없던 승마특기생' 자격으로 명문대 진학했다가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놀은 거지만, 조국 딸은 있는 제도 잘 활용해서 대학 가서 공부를 해봤지만 적성에 안맞았는지 성적이 나빠 유급당한거라 차원이 다른 학생같습니다.

한번 가만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악 내가 고급 입시정보 등을 갖고 있고 이를 자녀에게 연결해줄 인맥이 있다면, 그걸 과연 내 자녀에게는 '네 스스로 대입준비하라'며 모른 척 했을까. 아니, 설사 내 자녀에게 알려주더라도 '이런건 내 가치관상 다같이 공유하고 나눠야 해' 하면서 인터넷에 올렸을까? 저라도 안그랬을거 같아요. 저 혼자서 '기회의 평등' 어쩌고 하면서 신념을 실천한다고 해서 지금의 학벌 세습사회가 바뀌지도 않을 거니, 내 자녀의 지원은 지원대로 하고 여러 칼럼이나 글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계속 비판했을거예요. 아마 조국 후보자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 아주 이해가 안되지도 않아요. 이게 과연 법무장관으로서의 결격사유에까지 해당할 정도의 잘못인걸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 자유한국당이 마련한 집회에 일부 2030 세대가 참여해 발언까지 한 것을 보면 좀 황당합니다. 지금 조국의 딸이 저렇게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하기까지 활용한 그 제도를 함께 만들고 강화한 사람들이 보수 정권의 정치인들인데 그들을 비판하기는 커녕 되레 함께 하다니요. 조국 후보자가 과거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SNS 글과 행동들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상처감에 대해 충분히 사과해야 한다면, 자유한국당도 지금의 학벌 세습사회를 강화해온 것에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저는 70년전 해방이후 반민특위 활동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친일파들이 '문제는 우리가 아니야. 공산주의자들이 새롭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었어'라고 기회주의적 날조 주장을 펴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던 과거사가 떠올라요. 저들은 척결세력에서 갑자기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탈바꿈해갔지요. 자신들이 구축해온 역사에 대한 반성은 1도 하지 않고요. 지금 자유한국당의 기회주의적 작태가 그때랑 뭐가 다른가요. 그런데 그들과 함께 젊은 친구들이 촛불을 들다니요. 2030세대의 끝자락인 제가 볼때는 이건 정말 옳지 않은 선택같아요.


젊은 후배님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고 저는 직접 강남 한복판에서 그 배제와 박탈감을 체험한 사람이고 그 후유증을 아직도 앓는중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앓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국 후보자 개인의 문제로만 판단하지 말고, 이런 학벌 세습 사회를 조장하고 구조화한 기득권 정치세력들에 대한 분노로 더 확장했으면 해요. 조 후보자에게 분풀이 하듯 표출하는 데 그쳐서 해결될 사회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조 후보자와 여야 정치인들이 젊은 세대의 분노와 박탈감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조국이라는 돌출 변수로 촛불이 켜졌지만, 이건 사실 우리 사회가 20년 넘게 쌓아온 학벌 세습 사회에 대한 곪은 상처예요. 학벌 세습이 싹트기 좋은 환경은 진보 ·보수 정치세력  구분없이 앞장서 조장하고 정착시켜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2004년 발표되어 2007년 도입되고, 2008년 전국 대학으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정보 자원이 많은 강남의 학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왔습니다. 학벌 세습 사회에 대한 근본적 수술의 책임이 여야 정치권 모두에 있는 이유입니다. 지금이라도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이제 끝입니다. 극단적으로, 저같은 흙수저 집안에서 기자 직군의 사회인이나, 판사·검사·교수 등은 더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조 후보자는 청문회장에서 그간 자신이 쓴 글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딸의 대입 준비를 함께 한 것에 사과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정치인은 국민의 다친 마음을 위로할수만 있다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 이상으로 국민 앞에 머리 숙여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국민이 감동받고 상처를 치유하지요. 조 후보자는 그런 정도의 그릇은 되는 인품의 정치인이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압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이 논쟁에 끼어든다는게 요즘같은 시국에 정말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 글을 지금 안쓰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습니다. 너른 이해 바랍니다. 조국 후보자에 대한 다양한 판단 모두 존중하고 공감합니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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