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교수의 한국읽기 [더큰한국] 트럼프가 남북통일의 물꼬를 틀거라고? 한국인들이 모르는 미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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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8,641회 작성일 20-04-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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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로 마주보며 안부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편집자주> 

한반도의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논의하는 미국 정부의 관료들이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 소개하는 한국 언론보도를 찾기 어렵습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 석유재벌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가 외교관이 아닌 친일 군인 출신이라는 것도 우리는 잘 모릅니다. 미 국무부 한반도과의 공무원들중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모릅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제대로 된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이 떠나갔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반도의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미국 관료들의 실체에 대해 자세히 전합니다. 글이 길지만, 차분하게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던 싱가포르는 어떤 곳인가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은 포퓰리즘과 파시즘 사이에서 간교한 이득을 취한 나폴레옹 3세조차 시기할 만큼 시끌벅적 했다.  그러나 이 시끌벅적함의 이면에 정확히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과연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끌벅적한 결과들이 있었을까.


북미회담이라는 행사는 마치 헤비급 챔피언 쟁탈전처럼 꽤 노골적으로 홍보되어왔다. 트럼프는 만약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북한에 참혹한 결과가 있을 것임을 끊임없이 암시했었다. 그 뒤에는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주한 미 대사와 마이크 멀린 (Mike Mullen) 전 합참의장 등 강경파의 도움이 있었다.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복서 무하마드 알리(Mohammad Ali)가 조 프레이저(Joe Frazier)와 결투를 하기 전, 반복해서 프레이저를 조롱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에게는 책임이 따르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실제 입법 행위와 정책보다 이런 정치 퍼포먼스가 훨씬 편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핵 확산방지 전문가’로 거듭난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까지 부록으로 붙은 이 리얼리티 쇼를 위해 싱가포르(2018년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낙점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그냥 국가가 아니다. 아시아와 중동, 동남아시아의 세계자본이 흘러들고 이번 회담이 개최된 카펠라 호텔처럼 호화스러운 호텔이 무성한 초현실적 공간이다. 


빈곤인구가 적은 싱가포르는 마치 빗장도시처럼 역내의 분쟁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켜왔고, 덕분에 싱가포르를 일컬어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늘 붙어다닌다. 싱가포르의 5성 호텔들은 일반 서민이나 전문가를 위한 시설이 아니다. 이번 행사는 그 의미도 모르는 자가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같이 현란한 단어를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는 목소리로 점철되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관심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전 과정이 심각하게 반(反) 지성적이었다. 미국은 트럼프가 중간선거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혼란만을 조성하기 위해 이성적인 토론없이 감성과 연계에 기대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 이러한 비판적 진단을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온통 장밋빛 청사진 속에 트럼프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만큼 사려깊고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하려는 욕망을 느꼈다.  한국이 가진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언론이 객관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놓여 있지 못하다고 느꼈다.




■북미 정상회담 때 언론이 눈감는 것들


우리는 언론 또는 회담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다음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소름 돋는 군비경쟁

2) 핵확산금지조약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미국의 차세대 핵무기 증강

3) 남북한 내 건조지 확산 등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기후변화가 끼치는 영향

4) 남북한 모두에서 점증하는 부의 편중과 그로 인한 사회 및 정치의 왜곡

5) 더 이상 의미 있는 뉴스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한 언론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듣고 한국인들은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트럼프의 대담한 행동이 과거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에게 접근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설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냉전의 종식도 그렇게 유사한가? 독일과 폴란드, 소련이 조약을 맺은 기이한 역사의 한 순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독일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분할할 당시, 폴란드가 보후만(Bohumin)을 원하자 이를 지지하였다. 이에 소련이 소련-폴란드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독일과 폴란드의 지배세력 간에 협력관계는 형성되었다. 그런데 1939년 8월 23일,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였고, 이윽고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같은 달 17일 소련은 폴란드의 그 외 지역을 침공했다. 당사자들 간에 신뢰가 없었고, 시민사회의 의견 청취 없이 몇몇 권력자들끼리 의사결정을 독점했기 때문에 그저 '협약을 위한 협약'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로부터 2년 뒤인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그들의 조약을 위반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현재 미국 행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전문가는 고사하고 의회의 의견조차 듣지 않고, 시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몇몇 인물들만 모여서 일처리하는 풍경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을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이런 희비극은 트럼프의 정치적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의미 있는 정치 담론의 실패에 의해 발생되었다. 지식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물러나버렸고, 형편없는 교육과 언론에 노출된 대부분의 시민은 혼자 힘으로 세상사를 버텨야 한다.




■폼페이오가 김정은과 진지하게 대화했을리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미 국무부 장관이 대북 협상의 중심인물로 부상한 배경에 바로 이러한 문화적 환경있다. 폼페이오는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수십억 달러 자산가인 찰스와 데이비드 코크(Charles와 David Koch) 형제의 명령을 받들어 권력을 잡았고, 극소수의 부유한 후원자 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관심도 없다. 


폼페이오는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핵 확산금지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폼페이오는 핵 확산 금지 협약을 시행하고 외교조약을 협상하는 기술적이고 까다로운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그는 수년간 의회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란과의 핵 협정을 훼손하기 노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전임자인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이 국무부의 거의 모든 고위급 공무원을 해임·강등 또는 사직하도록 했기 때문에, 폼페이오의 국무부에는 냉소적 관료주의자들만 남아 있다.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폐기하기로 한 결정은 폼페이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 외교의 정통성에는 최후의 일격이었다. 이 복잡한 조약을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전문지식과 투명하게 문서화되는 협상이 필요했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도 요구되었지만 모두 무시되었다. 오늘의 미국은 국제법과 외교관례를 그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한번도 가지 않은 위험한 해역에 와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 필요한 것은 지난 수십년간 파괴된 토양과 산림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초 영양소가 턱없이 부족한 맥도날드 햄버거나 미국산 농산물에 중독되는 것이야 말로 북한주민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아무리 트위터로 떠들어도, 이산가족상봉이나 사회 및 의료분야에 NGO가 참여한다는 소식은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주민의 진정한 관심은 무엇인가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진지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는 소식조차 없다.


대신, 언론이 이런 저런 중요한 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암시를 하며 우리를 애태울 뿐이다. 미 의회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불가능한 과제의 완성을 트럼프 정부가 확인할 수 때까지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인들은 내 주장을 과격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왜냐면, 이런 미국 행정부의 전문성의 후퇴 혹은 붕괴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준 한국 언론이나 지식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미국 정부 내에서 지난 몇 년간 벌어진 일을 자세히 기술하겠다.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미국 정치권의 변화


미국 국무부 본청인 해리 트루먼 빌딩의 전면부는 인턴쉽 과정을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전세계 대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인기장소이다. 1941년 지어진 이 석회석 전면부는 WPA (미국 공공사업촉진국) 건축양식을 정제한 양식으로 절묘하게 절제된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시즘에 맞서 싸운 외교관들이나 유엔을 설립하기 위해 조지 마셜(George Marshall) 국무장관과 늦은 밤까지 고생한 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묻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풍스런 아름다움은 석회석처럼 단단하고 회색빛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2017년 2월~2018년 3월 미국 국무장관)은 모든 윤리적이고 능력 있는 전문 외교관들을 이 건물에서 쫓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고위 외교관들을 노골적으로 해고하거나 그들이 스스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불쾌한 환경을 조성했다. 국무부 종말의 마지막 단계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이어져온 후퇴의 흐름의 정점일 뿐이다.



국무부의 종말은 연방정부의 종말이라는 더 큰 사건의 일부이고, 그 시작은 1970년대였다. 로널드 레이건과 그의 부자 측근들이 권좌에 앉은 1981년에 그들은 연방  공무원이 기존에 누리던 보호조치를 박탈하고 이들의 노동조합을 훼손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전문 공무원들은 권위의 기반을 잃기 시작했고 더 이상 정치인을 견제할 수 없었다. 정부기관은 더이상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었고, 지식인들은 변호사가 되거나 은행에 취업했다.


레이건 정부는 정책 민영화의 첫 걸음을 내디뎠으며, 장기적 정책이 아닌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 싱크 탱크, 컨설팅기업, 그 밖의 정부에 기생하는 기관들에 납세자의 세금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자체 전문성을 개발하기 위한 자금에 목말랐고, 어쩔 수 없이 컨설턴트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기업과 정부의 권력 관계가 영구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국무부 내 전문성을 찾으려는 전쟁은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급박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언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세계대전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익 극단주의자들을 백악관으로 데리고 왔다. 물론 정부 내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지 테넷(George Tenet)이 CIA에 버티고 있었고,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당 출신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국무장관이 되었다. 


이 둘이 영웅은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오래 살아남아준 덕분에 딕 체니(Dick Cheney)와 도널드 럼즈벨트(Donald Rumsfeld) 처럼 자신의 불법행위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모조리 제거해버릴 기세인 자들의 활동이 부분적이나마 성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연방정부에는 외교와 안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훌륭하고 의욕적인 자들이 남아있었고, 이들은 체니 부통령의 임기가 한창일 때도 공개적으로 부시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저항의 목소리로 인해 체니와 그 측근들이 시도한 이란과의 전쟁이 두번이나 (또는 그 이상) 좌절되자, 우파 진영에서는 공무원 체제 전체를 무너뜨리고 그 기능은 기업에 위탁해 버리기로 결정했다. 민간 부문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명령을 불복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정부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달라졌다. 평범한 공무원들의 대우는 형편없어진 반면 고위공무원들은 특전을 받았고, 퇴직 후 컨설턴트로 일하며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미국의 정책결정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이것이 이윤을 추구하는 단체의 손에 맡겨졌다. 미국 정부의 정책 상당수가 위헌적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무부가 전문성을 상실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국무부의 입지가 무너졌더라도, 폼페이오가 진짜 권력을 쥐고 있고 정책결정을 이행할 능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는 의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법률 절차 문제를 유린할 수 있기 때문에 역대 국무장관들보다 강력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관해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30년 동안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전체를 둘러싼 변화의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을 견제할 능력을 잃고 정부 정책 입안을 이윤을 쫓는 법조계와 로비스트, 컨설턴트에게 전가한 것은 비단 미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시민 사회도 더이상 정책 입안이라는 민주적인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미국의 시민사회를 억만장자들이 사로잡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스코치폴(Theda Skocpol)은 <민주주의의 쇠퇴: 미국 시민생활의 변모>(Diminished Democracy: From Membership to Management in American Civic Life)라는 책에서 모든 계층의 미국인들이 민주주의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던 관행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 미국인들은 학부모 모임이나 라이온스 클럽 조찬, 동네 행사 등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만났고, 퇴역군인 모임과 여성단체, YMCA나 보이스카우트 등의 모임을 통해 한데 모인 반면, 오늘날 미국 시민은 혼자 지내거나 소수의 친구들과 스타벅스에 앉아 연예인 이야기를 한다.


과거 세대에서는 그런 단체들도 선거를 했고, 많은 시민들이 이런 지역 단체들을 관리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그 중에서도 특히 지난 15년간, 대부분의 시민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만 의견을 교환할 뿐, 참여와 헌신이 필요한 활발한 단체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선거운동과 정책입안은 여전히 계속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독점한 선거에는 시민의 생활 속 민주 단체가 낄 자리는 없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일상과 동떨어지게 된다. 정부는 불투명하고, 참여를 독려하지 않는 ‘경영 스타일’을 모델로 삼았고, 민주적 과정은 시들어버렸다.


일반 시민들이 민주주의 과정에 참여를 하지 못하는 동안, 부유 계층과 기업들은 엄청난 돈을 지출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충족하는 NGO를 설립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를 찾거나 아예 광고예산으로 압박해 이 뉴스 저 뉴스 옮겨다니며 북한의 위협이나 자유무역의 이점이라는 허상을 설파할 수 있는 전문가가 출연하도록 자금을 댔다. 그러는 와중에 폼페이오는 한숨 돌려왔을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의 소위 ‘보수주의자’는 극소수의 우파 기업이 소유한 상업매체가 조직적으로 허위정보를 보도하는 가운데 미쳐가는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무고한 시민들일 뿐, 정치적 신념에 의해 탄생된 무리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은 운 좋은 사람들은 이런 트럼프 지지자들이 겪어온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없이 이들을 “어리석은” 유권자로 치부해버린다.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해 전문가와 언론인을 매수하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만들어내고, 기업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 과정은 ‘미국을 지지하는 NGO 모임’(NGO People for the American Way)가 1996년 발간한 보고서 (돈으로 시민운동 사로잡기)“Buying a Movement” 에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어두운 자본이 미국 정계를 집어삼킬 무렵 작성되었고, 이후 20여년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기업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 정책 과정 왜곡의 첫번째 단계에 불과했다. 장기적으로 소수의 개인들이 엄청난 부를 가지면서 미국은 갑부의 부 축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기업이 아니라 개인 부호들이 황제처럼 책임은 지지 않되 정책은 결정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 5년간 지속된 감세와 친 기업적 규제완화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 세계를 만들어냈다. 한 연구소가 발간한 ‘2018년 부자 인구조사(Wealth X report)’에 따르면 부자들의 재산은 2017년 24% 증가했으며, 세계 GDP의 12%인 9조2천억달러가 이들 손에 있다.


20년 전에는 많은 기업의 대표들이 정책에 영향을 끼치면서 민간 부문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고, 느슨하고 관대한 능력중심주의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러나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 제프 베조스(Jeff Bezos),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워렌 버핏(Warren Buffet) 등이 마치 현대의 예언자라도 되는 듯 한마디만 하면 언론이 떠받들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러한 억만장자들만이 미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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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강경화(왼쪽부터) 외교부 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찰스 코크 형제, 코크의 꼭두각시 폼페이오


그런데 비밀스러운 돈 더미와 언론 통제로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숨겨진 억만장자들이 있다. 강경 친 이스라엘파인 셸던 애덜슨(Sheldon Adelson)과 버나드 마커스(Bernard Marcus), 로버트 머서(Robert Mercer),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석탄 석유의 큰손인 데이빗과 찰스 코크 형제가 그들이다. 이 갑부들은 정치에 충분한 돈을 댐으로써 사회 전체를 쉽게 손아귀에 넣고, 자신들의 요구에 가장 먼저 응답할 대통령을 뽑기 위한 도박을 했다. 모순덩어리의 우스운 트위터 멘션과 멍청한 보도로 세상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들의 노림수가 옳았다.


5년 전만해도 이런 시나리오는 불가능했다. 최근의 ‘세제개편’ 이후 눈에 띄게 증가한 부의 대물림은 이 갑부들과 그들의 측근이 권력에 취해 앞으로는 더 과감히 행동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합산 자산가치가 대략 1천억 달러를 초과하는 코크 형제가 바로 마이크 폼페이오를 만든 힘이고, 폼페이오는 미국인이나 국제사회의 요구는 커녕, 연방정부 관료로서 자신의 의무가 아닌 코크 형제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내가 왜 자꾸 코크 형제를 반복해서 소개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들 형제는 미국의 강경 보수 우파를 지원하는 막강하고 유력한 재벌가들이어서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핵심인데도 정작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6월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코크 형제의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가 읽어내린 탈퇴 발표문의 문장 하나하나가 코크 형제의 평소 주장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밝혔다.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는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 본사를 둔 코크산업(koch Industries)의 소유주들이다. 두 사람의 재산은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10위 안에 든다. 2017년 기준 둘의 재산을 합하면 974억달러(약 110조원)을 넘어 1위인 빌 게이츠(860억달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코크 형제가 관리하는 정치인으로는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있다. 그는 2012년 코크 형제가 대통령 후보로 민 적이 있고 선거자금으로 30만 달러를 기부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는 코크 형제의 텃밭인 캔자스주 하원의원 출신으로 아예 ‘코크 가문의 하원의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지원을 많이 받았다. <뉴요커>에서 21년째 기사를 쓰고 있는 제인 메이어가 쓴 <다크 머니>는 “트럼프야말로 본질적으로 코크형제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매진해온 광범위한 정치활동의 결과물임에 틀림없다”고 썼다. 


코크 형제는 2016년 대선 때 1600명이 넘는 유급 직원들을 미국 35개 주에 파견해 전체 유권자의 80%를 접촉하도록 움직였다. 이들은 정치 자금을 8억8900만달러나 모아 공화당 공식 조직보다 자금과 규모 면에서 앞질렀다. 이들은 1단계로 지식인들에 투자하고, 2단계는 정책 연구소에 투자하고, 3단계로 시민모임에 대한 지원을 한다.  코크 형제는 철저하게 민주주의가 아닌 자본의 작동 방식으로 미국 정부와 사회가 운영되도록 장악해왔다.


한국 언론들이 워싱턴의 백악관과 의회나 월스트리트의 소식만 전하느라 정작 미국 사회 생리의 변화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무심하다. 폼페이오나 트럼프의 동향 하나하나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는데, 정작 그들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자본가들에 대해서는 분석이 없다. 한국인들이 좀 인내심을 갖고 폼페이오와 코크 형제의 관계에 대한 미국 지식인들의 설명을 살펴봐주기를 바란다.


폼페이오는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코크 형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이렇게 급격히 부가 집중되고 부가 곧 힘이 되는 사회에서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정치인중 한명일 수 있다. 현재 폼페이오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쥔 채,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 및 다른 인물들과 북한 문제를 두고 샅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폼페이오의 권력이 미 국무부의 공무원이나 CIA 또는 국방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걱정해야 한다.


'Documented Investigations'의 이사이자 진보적 언론활동가인 리사 그레이브스(Lisa Graves)는 한 인터뷰에서 폼페이오가 사회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코크 형제와 밀접한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폼페이오는 코크 형제가 제안한 입법을 지지하고 캔자스 일반 유권자의 문제는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기업을 규제하거나 환경을 보호하고,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둔 정부 교육제도를 축소시키는 코크 형제의 운동에도 앞장서왔다.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의 부자들은 허울좋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폼페이오를 지원하고, 정부의 권력 남용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기업의 범죄행위에 맞설 능력만 제한하는 “제한된 정부” 같은 생각을 옹호해 왔다. 


시민단체 ‘Food and Water Watch’를 이끌고 있는 위노나 호터(Wenona Hauter)는 “폼페이오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 자신을 팔 수 있는 기회주의자”이며, “그는 GMO 식품 표기를 요구할 수 있는 캔자스 주 정부의 권한이 사라지는 것을 방치했다. 그의 충성심은 평범한 미국 유권자가 아니라 몬산토(Monsanto 다국적 농업기업)와 위험한 농화학물질, 그리고 모든 농부가 이 물질에 비정상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도록 향해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폼페이오는 의회에서 쓰레기 과학을 옹호하고 기후변화를 부인하며, 코크 형제가 출자한 단체가 출간한 가짜 연구결과를 배포해 마치 환경오염과 코크 형제의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호터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크 형제가 수천만 달러를 들여 기후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부정하기 위해 쓰레기 과학을 선전했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과학계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코크 형제의 노력은 이게 끝이 아니다. 코크 반대 단체인 “UnKoch My Campus”은 코크 형제가 자신들의 위선적 “자유시장” 정책, 즉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기업 규제완화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옹호해줄 교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대학의 교수임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문건을 발표했다. 코크형제는 여러 대학들이 교수를 임용하거나 고용유지를 결정할 때 비밀리에 자신들의 발언권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또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법인세와 정부의 규제를 최소한으로 줄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청년기업가(Youth Entrepreneurs)”를 육성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국전문가들이 다 떠나갔다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았는가. 이제 한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떠나간 상태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반도의 운명이 얼마나 엉터리같은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지 경계심을 갖고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사를 보자. ‘The Atlantic’은 2018년 2월11일 ‘미 국무부에서 전문가들이 사라진다’(The Hollowing Out of the State Department Continues)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첫 8개월간 12퍼센트의 외교부 전문가들이 정부를 떠났다고 한다. 외교부에는 특히 민간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면 무역 ,약물 문제, 무기 거래, 환경 문제 등과 같은 국제문제들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협상 단계에서 민간전문가들은 핵심 열쇠로 작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 전문가들이 떠나가버리고 있다.


핵확산 문제에 있어 미국내 최고 전문가인 리차드 존슨이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를 떠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에서 인재 유출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는데 리차드 존슨의 이탈은 쐐기를 박는 사건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협정을 탈퇴한다고 선언하자 결국 미국 정부를 떠났다. 리차드 존슨은 영국,프랑스,독일 등과 협력하며 난파 위기에 놓인 이란 핵협정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한 것에 회의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진심으로 갈구하는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대단한 미국 뉴스임에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뿐인가. 미 국무부에서 한반도과 과장을 했던 존 메릴(John Merril)도 떠났고 프랭크 자누지(Frank Jannuzi)는 2000년대에 동북아 외교의 핵심인물로서 기대가 많았는데 역시 미국 정부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석유나 팔던 엑손 모빌의 렉스 틸러슨이 미 국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정부이니 어떤 전문가들이 납득하겠나. 


나는 15년전까지 미국에서 대학교 교수와 각종 동아시아 관련 정책 고문을 맡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 돌아와보면, 그때 상당히 실력있었던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없음을 목격한다. 최근 미 국무부 한반도과에 근무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 것에 놀랐다. 과거 존 메릴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계속 무시당하는 것에 좌절했고 지금은 은퇴했다. 한국에서라도 활동하면 좋겠지만 한국인들은 ‘한국을 경시하는 외교관’들을 더 좋아한다.


2019년 9월 중앙일보-CSIS 총회가 열렸다. 한국 쪽이 큰 돈을 내고 연 행사였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을 유일한 외교 옵션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강경한 우파다. 이런 사람의 의견은 하나의 참조 정도는 될 수 있어도, 기조 연설에 반영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다. 기이할 정도다.


프랑크 자누지는 예일대에서 내 1년 선배였다. 중국전공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맨스필드(Mansfield) 재단의 대표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충분히 미 국무부 차관 정도 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요원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식인을 싫어하고 경험이 전무하더라도 정치작전에 능숙한 사람을 임명한다. 소위 동북아 전문가들은 더 이상 트럼프 행정부와 일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운명이 어떤 아마추어와 극단적인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지 지금처럼 정보가 별로 없고 불안한 시기도 없다.  


내가 한국인들에게 느끼는 기이한 점은, 그렇다면 한국에서라도 미국 내에서 활약할 ‘한국 전문가’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텐데 그런 전략은 안느껴진다. 그냥 그때 그때의 목적에 맞춘 로비스트만 찾으려 한다. ‘지한파 미국인 전문가’는 미국 사회가 만들지 않는다. 한국이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그렇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사라진 미국 사회에서 나오는 황당한 주장들


이렇게 동아시아 전문가가 미국 사회 주류에서 이탈해가기 시작하면서 황당한 주장들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얼마전 미국 국무부 카렌 스키너(Karen Skinner) 정책계획 국장이 신황화론을 주장한 적 있다.  이것은 19세기 미국 사회에 퍼져있던 아시아 경계론을 21세기에 끌고 나온 것이다.


20세기 내내 미국은 소련과 경쟁하면서 보냈다. 다만 이것은 이데올로기 경쟁이었지 문명의 대립은 아니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중국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이질 문명’의 대립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신황화론 따위는 새로운 문명의 대립을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 이질 문명에 대한 미국 사회의 두려움은 많이 잊혀졌지만 19세기에는 심각했다. 미국은 그때 아예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했었다. 1882년 중국인 이민 금지법안이 있었고 아예 아시아 인종 전체의 이민을 금지했다. 미국이 백인 다수 사회가 된건 그 덕분인데 아마 그때 이민이 금지되지 않았다면 지금 미국 사회 상당수는 아시아계가 차지했을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이런 신황화론은 중국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자신들과 상관 없는 것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글과 활동을 내밀하게 관찰하면 그들은 동양인 전체를 위협적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갈수록 경찰과 군인 사회에서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 자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 행정부의 상당수 관료들은 중국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갖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도 그런 경계적 태도를 갖출 수 있다. 모두 미국 행정부 내에서 실력있는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떠난 것에서 벌어진 파생효과다. 그렇다고 동아시아 전문가를 새로 양성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냉전시대에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아시아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안되면 어떤 생각도 폐기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사회 문제이지만 한민족 입장에는 미래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 문제이다. 그러나 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 언론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미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연구할 자세가 안되어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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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정리 허재현 기자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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